'오이밭에서는 신을 고쳐신지 않고 오얏나무 아래서는 관을 고쳐 쓰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중국의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는데 말인즉슨 오해할만한 일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게 좋다라는 말이다.

한 사람이 길을 걷다가 문득 아래를 보니 신발끈이 풀려진 것을 발견했다. 이에 자연스레 멈춰서 앉아 신발끈을 다시 매고 있다. 갈 길이 멀기에 신발끈 다시 제대로 매고 다시 걸어갈 생각에만 잠겨있다. 지금 자신이 신발을 고쳐매려고 앉은 곳이 탐스럽게 익은 오이밭 한가운데라는 사실은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람 머리속에는 목적지에 한시바삐 도착할 생각, 목적지에 도착해서 해야할 일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오이밭 주인의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일 뿐이다. 아무 표정의 변화 없이 한 사람이 자신의 오이밭 가운데로 난 길을 지나가고 있다. 오이밭 한가운데 이르러 갑자기 그 사람은 시선을 아래로 돌려 자신의 오이밭을 내려다 본다. 주인이 설마 설마 하는 사이 그 사람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오이밭 가운데 살며시 앉아 양손으로 뭔가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이놈이 감히 내가 두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내 밭의 오이를 훔쳐?'하고 발끈하며 주인은 오이밭 한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에게 달려가고 결국 이런 저런 말이 오가며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다.

길을 가던 사람이 신발끈을 애초에 잘 묶어 풀리지 않도록 하던가, 아님 신발끈이 풀려진 것을 발견함과 동시에 지금 오이밭을 지나고 있다는 것도 인식하고는 오이밭을 한참 지난 곳까지 와서 신발끈을 고쳐맸다면 이런 싸움은 없었을 것이다. 설령 오이밭 주인이 성격이 비뚤어져 어느정도 이해할 만한 상황의 경우에도 시비를 거는 타입이라 하더라도 오이밭 사이를 지나다가 머뭇거리지 않는 한 싸움 자체가 이뤄질 수 없다. 오이밭 주인의 성격이 좀더 부드러웠어도 이런 싸움까지 오진 않을 수도 있다. 오이밭 주인이 조금만 자세히 관찰한다면, 오이밭으로 가서 상황을 차근차근 파악해본다면, 지나가던 사람이 오해할만한 행동을 하긴 했지만 오이를 따려던 것이 아닌 신발을 고치려는 의도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을 수도 있다.

누구 하나만 주의해도 일어나지 않을 싸움이었는데 운이 없게도 이번 경우는 길가던 사람도 별로 신중한 타입이 아니고 오이밭 주인 성격도 그리 좋지 않은 경우가 함께 겹쳐 일어났다.

애초에 대통령 연임제 헌법 개정을 하려 했다면 집권 초기, 혹은 늦어도 작년 초반정도까지 공론화 해 끝내버렸어야 할 일이다. 사실 대통령 연임제 헌법 개정 그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여야의 이해를 떠나 상당수가 그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고 국민들도 대체로 동의하는 내용이다. 다소 문제제기는 있을 수 있지만 첨예한 이해대립은 사실 찾아볼 수 없는 내용으로 보여진다. 헌법개정 국민투표로 혈세낭비한다는 비난정도는 들을 수 있어도 충분히 진행 가능한 일이었다. 정말 이 문제는 집권 초기에 깔끔하게 끝내던가 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여,야 를 막론하고 인정하던 인정하지 않던 대선 레이스에 접어들어 옆에서 콩알탄만 '피쉬식~' 터져도 모두 대선과 연관해서 생각하게 마련인 때다. 이런 상황에서 오이밭 한가운데에 갑자기 주저앉는 행동을 하고는, 자신은 오직 풀어진 신발끈을 동여매려는 의도밖에 없었다고, 자기는 오이밭의 오이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신발끈 제대로 묶고 내가 가야 할 길 묵묵히 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고 항변해봤자 그의 본심을 이해해주고 받아줄 상황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게 뻔하다. 더 안타까운건 노무현 자신이 지금 신발끈을 고쳐매겠다고 오이밭 한가운데 주저앉으면 평소에도 노무현이라면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이 모두다 오이 도둑이라고 몰아세울 것이라는 것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주저앉아버렸다는 것이다. 전혀 자신의 본심에 대해서는 이해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노무현 본인도 알고 있었을텐데도 그 사람들에게 자신은 정말로 신발끈 다시 매려는 의도 그 한가지밖에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는 꼴이다. 그런 설명이 받아들여질 오이밭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신발끈 매는 것이 중요하지 오해받는 것 자체는 부차적인 것이다라고 말하는 노무현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어딘가 답답해 옴을 누를 길이 없다. 오히려 노무현의 본심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답답한 마음을 가중시킬 뿐이다.

물론 성격 비뚤어진 오이밭 주인도 이 싸움이 이처럼 커지는데 한몫 하고 있다. 정말 신발끈을 고쳐매려고 앉았는지, 오이를 훔치려고 앉았는지 꼼꼼히 따져볼 것도 없이 일단 오이밭 한가운데 앉아버렸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오이를 훔친것과 다름없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여기는게 이 주인의 정신상태다. 탐스럽게 익어가는 오이를 잘 가꿔 예상하는 수확량을 12월에 거둬들이려면 다른 것 신경쓸 겨를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중에 이런일로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것 자체가 짜증나는 것이다. 본심이 뭐였는지 들어줄 시간도 없고 정신적 여유도 없으니 오이 도둑놈 빨리 꺼져라는 고함만 지를 뿐이다. 이런 히스테릭 상태의 주인에게 내가 오이를 훔칠 의도가 없었다고 계속 설명하는건 사실 소용없는 일이다. 이런 히스테릭한 사람은 상대방이 구구절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상대방에 대해 품고 있는 범죄사실에 대한 확신만 키울 뿐이다. 이 사람의 정신상태에서는 이미 노무현의 본심이 과연 무엇이었는가는 이제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이미 이 사람에게 노무현은 오이를 훔친 것과 똑같은, 아니 그냥 오이 훔친 놈보다 더한 짜증을 유발할 뿐이다.

이런 주인에게 오이도둑이 아니라는 이해를 시키려면 논리정연하고 공손한 설명은 필요 없다. 이런 정신상태를 가진 사람에게 오이도둑이라는 오해를 사지 않는 방법은 두가지 밖에 없다. 아예 이런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절대 오이밭에 주저 앉는 일을 하지 않거나, 주저 앉았다면 오이밭 주인이 감히 대들 수 없을 정도의 힘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자신보다 힘이 많다는 것을 아는 순간 오이밭 주인은 모든 설명을 알아듣는 놀라운 이해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노무현보다 오히려 자신들의 힘이 더 세다고 생각하는 오이밭 주인은 설령 마음 한구석에서 노무현의 본심을 약간 이해하는 마음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 마음 자체를 부정해버린다. 결과적으로 노무현이 오이 도둑이라는 확신만 키워 갈 뿐이다.

결국 지금의 상황은 대통령 4년 임기, 연임제라는 제도가 과연 우리나라 정치제도에 적합한 지, 혹시 모를 문제점은 없는지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하는 것은 물건너 가버렸다. 결국 상황은 노무현이 이런 시기에 헌법 개정을 발의하고자 하는 것에 정치적 의도가 있느니 없느니 서로 박터지게 싸우는 꼴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치고받고 싸우다가는 결국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를 꺼내지 않은 것만 못한 상태에서 전혀 진전됨 없이 끝나버릴 공산이 높다.

언제나 되어야 우리나라 정치는 오이밭에서는 신발을 고쳐매지 않는 세련됨, 설령 내 오이밭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더라도 무조건 오이도둑으로 몰기 전에 무슨 다른 일이 있는지 먼저 헤아리고 따져볼 수 있는 그런 침착함을 갖게 될것인지 모르겠다. 세련되지 못한 노무현, 말이 안통하는 한나라당. 암튼 모두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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