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 감독의 영화 '한반도'. 봉준호 감독의 '괴물'의 개봉시기와 약간의 차이는 두고 있으나 거의 동시에 극장에 걸린 작품이다. 반미주의를 교묘하게 내세운 영화다 아니다를 놓고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던 '괴물'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메세지를 쉽게 포착하기 힘든 영화중에 하나였다면 '한반도'는 대놓고 민족주의를 앞에 내세워 이를 떳떳하게 내세우는 전략을 취한 영화였다. 민족주의의 상업화와 대중화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는 강우석 감독의 당당하기 그지 없는 발언은 정말 뭔가 말하고 싶은게 있는 것인가 하는 일말의 기대를 품게 만들기도 했다.
기실 민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동시에 상업주의를 표방한 블록버스터급 영화의 수준은 굳이 영화의 내용을 직접 확인해보지 않아도 뻔한 수준일 확률이 상당히 높다. 일단 민족주의라는 다소 퇴색된 아젠다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 자체의 후진성을 탈피하기 어렵다. 현실의 장에서는 이미 힘을 잃은 어르신들의 한탄어린 하소연에서나 접하게 되는 민족주의를 호소력있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세련되고 정제된 논리의 힘을 빌기보다는 감정에 호소하여 순간 울컥하게 만드는 방법이 그나마 효과적이다. 여기에 상업주의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는 블록버스터급의 영화라는 조건이 더해지면 사실 더이상 논할꺼리가 남아 있지 않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만들었기에 또한 엄청난 흥행을 기본적으로 담보해야하는 영화에서, 그것도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영화에서 기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처절한 울부짖음밖에 없다. 민족주의의 당위성을 철학적, 도덕적 견지에서까지 다루기에는 2시간여의 러닝타임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영화속에 쏟아부은 자본을 다시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영화는 심오한 이야기보다는 화끈한 화면과 내용으로 채워져야 하는 한계까지 안고 있다.
이러한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강우석 감독 자신의 강한 의지로 만들어진 영화 '한반도'는 결국 예상 가능한 여러 제약조건들을 그 어느것 하나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주저앉아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한일간의 긴장관계를 조성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인 경의선에 대한 일본의 권리 주장의 소재부터가 3류 소설에서도 찾기 힘든 어색하기 짝이 없는 플롯이다. 사실 이러한 엉성한 플롯에 근거해 썩 괜찮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영화 제작자를 찾는 것도 힘든 일일 것이다. 한,일 국가간의 긴장 관계의 흐름도 전혀 매끄럽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양국이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국가 수뇌급 인사들간에 오고가는 이야기의 수준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데 이 영화는 양국 수뇌급 인사들간의 대화가 온통 감정적 협박과 배짱으로만 이루어져 있어 사실상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양 국가 수뇌급간의 대화라고 보기에는 너무 저급한 수준의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주요 인물들 간에 이루어지는 감정선의 흐름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인물들의 감정의 흐름이 자연스러운 곡선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지 못하고 끊어지는 듯한 감정 방향의 변화가 줄곧 보인다. 어떠한 상황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던 인물들의 감정선이 작은 조약돌 같은 일 하나에 순간 180도로 그 방향을 바꿔버리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흐름이었다.
민족주의를 내세운 블록버스터급 영화. 사실 이런 영화가 기대 이하의 초라한 수준의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다행스럽기 그지 없는 일일 터이다. 비록 영화라는 단순한 매체라고는 하지만 그 이면에 또한 엄청난 파급력을 갖고 있는 것이 영화라는 매체다. 민족주의를 내세운 영화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작품성을 등에 업고 민족주의라는 프로파간다를 퍼트리게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다행히 '한반도'라는 영화가 더운 여름 시원한 극장에서 팝콘 먹으며 2시간동안 시간 때우는 역할로 끝났기에 망정이지, 이 영화로 인해 한물간 민족주의가 다시 일어나 시끌시끌하게 되었다면 얼마나 피곤하게 됐을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오싹하다.
다행스럽게도, 2시간동안 편히 보고 즐기며, 영화의 어이없음에 실소를 금치 못할 수준의 영화를 만들어낸 강우석 감독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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