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주 전부터 인혜에게 영어를 배우고 있다. 주된 것은 회화이지만 vocabulary 숙제도 있고 문법 관련한 숙제도 있다. 시간이 되는 한 writing 부분도 지도를 받으려 하지만 무한정 시간을 쏟을 수 없기에 수업의 상당부분은 내가 가장 부족한 부분인 회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한 1년전쯤인가, 인혜에게 영어회화를 배워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고 교보에서 꽤나 비싼 교재도 같이 골라놓고는 두번인가 하고는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이제 와서 다시 인혜에게 영어를 배우려 하는 이유는 첫번째로는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 또한 앞으로 내가 해야할 일 들 중에서 영어의 비중이 그냥 우습게 넘겨버리기에는 무시할 수 없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어로 된 문장 이해하고, 대충 알아듣고, 의미전달에 문제 없는 영어 메일 주고받는 것에 만족해왔지만 이제 그것만으로는 안된다는 위기감때문이다. 엔지니어에게는 최후의 순간까지 별 필요 없을 것 같았던 유창한 영어회화가 어쩌면 내 인생의 큰 물줄기의 방향을 바꿔놓는 것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내 옆에 이렇게 수준높은 영어선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 영어선생님이 내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나를 가르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에헤라 디야~ 하며 전혀 상관하지 않고 사는 것 또한 어떤 식으로든 주어진 나의 달란트, 나의 기회를 그냥 썩혀버리는 것이라 생각들었다.
인혜 자신 또한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일 때문에 눈코뜰새 없이 바쁜 요즈음이다. 그런 일들을 준비하다보면 종종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경우가 있다. 몇달전 바쁘게 준비하고 있던 인혜에게 엄습했던 불안감은, 지금 인혜가 준비하는 것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토익 시험을 신청하게 만들었다. 간혹 불안한 마음에 '취업이나 해버릴까~'하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도 막상 취업에 필요한 토익 점수가 없다는 사실에 그냥 무심결에 신청해버린 시험이었다. 신청하고 난 후, 왜 이걸 신청해서 애꿏은 돈만 날렸는지 한탄하던 인혜는 시험 전날 새롭게 바뀐 토익 모의고사 한권 사서 풀어보고 기분전환하는 마음으로 시험을 봤다. 점수가 잘나와도 그만 안나와도 그만인 시험이라서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가 얼마전 점수가 나왔을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고, 인혜와 같이 점수를 확인해보니 990점 만점에 980점을 맞은 것이다.(인혜는 쪽팔리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촌스러운 김동수는 이런걸 또 아내자랑이라고 자랑스럽게 점수를 쓴다^^) 토익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시험도 잘 하던 인혜였지만 내 수준이 뭐 토익점수 정도 되야 이게 어느정도 수준인지 감이 오는 정도였기에, 인혜의 이 성적을 보니 정신이 버쩍 들었다. 오~ 가뜩이나 영어실력 향상이 필요한데, 당장 인혜를 졸라서 다시 영어공부 시작해야겠다는...
역시 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내 스스로 생각해서인지 약간의 일정의 변화가 있긴 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수업을 해오고 있다. 어디에서도 쉽게 할 수 없는 1:1 수업이기에 나름대로 실력 향상의 속도도 꽤나 빠르다고 생각한다. 나를 가장 잘 알고, 내가 어떻게 영어를 엉망으로 사용하는 지를 잘 아는 이 세상의 유일한 선생님으로부터 배우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회사에서 영어회화 강좌를 제공하여 들을 때에도 늘 불만인점은 수업시간 자체가 전혀 도움도 안되고, 실력 향상도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10여명 듣는 나름 소그룹 영어회화이지만 사실 내가 영어로 나의 생각을 말하는 시간은 채 1분도 안되는 현실이 늘 불만이었다. 말이 꼬여서 어물 어물대면 나의 꼬인 상태를 풀어주어 내가 계속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인도해줘야 할텐데 이놈의 원어민 강사는 '아~ 너가 말하려는 것이 이러이러한 것이지?'라는 식으로 추측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catch해 버리고 나면 정장 내가 할 말은 'yeah, yeah~ that's exactly what I mean'밖에 남지 않는다. 그렇게 하다보니 몇번 수업듣고 나면 그 수업 시간 자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암튼 이런 영어수업은 추운날 내가 직접 학원에 찾아가기까지 하고, 또한 돈까지 들여서도 받기 힘든 것이라는 생각에 요즘 들어 인혜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나같은 사람 영어 회화 가르치려면 정말 미칠 노릇일텐데, 그래도 짜증 하나 내지 않고 남편의 허접한 영어수준을 참아주고 가르쳐주는 인혜에게 다시한번 정말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같은 사람 가르쳐주는 것만으로도 내가 인혜에게 빚지는게 참 많아지는 것 같다. 인혜한테 정말 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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