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의 <용은 잠들다>. 1992년에 제 45회 일본 추리작가 협회 수상작이라 하니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작들 중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야 웬만하면 500페이지 넘기는 것은 기본이고 두 권 이상의 분량이 넘는 작품도 흔하니, 488페이지 분량인 <용은 잠들다>가 다소 짧게 느껴지는 것도 일차적으로는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물론 <용은 잠들다>가 짧게 느껴지는 주된 이유는 결코 짧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긴 분량 속에서 긴장을 잃고 축축 늘어지는 일이 없이 탄탄한 긴장력을 시종 유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은 잡지사 기자인 고사카와 초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신지라는 아이를 중심으로 하여 이야기가 진행된다. 특히 신지라는 아이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거나 혹은 사물을 만졌을 때 그 사물과 관련된 과거의 사건을 읽어내는 초능력을 갖고 있는데, 폭우가 쏟아지던 밤에 고사카의 차를 얻어 타게 되며 둘이 처음으로 조우하게 되고 바로 첫 번 째 사건에 같이 개입하게 된다.
그 첫 번 째 사건이라 함은 바로 그 폭우가 쏟아지던 밤에 물이 차오른 도로의 맨홀 뚜껑을 누군가 열어 놓는 바람에 한 초등학생에 물살에 휩쓸려 맨홀 속으로 빠져들어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신지의 초능력에 힘입어 하루도 되지 않아 맨홀 뚜껑을 열어놓은 범인을 찾아낼 수 있었지만 동시에 신지의 성급한 대응으로 인해 범인들의 자백을 얻어내지 못하는 상황을 맞으며 사건의 종료는 한 없이 미뤄지는 형국을 맞는다.
또 다른 사건은 고사카가 근무하는 잡지사로 배달되는 백지 우편물로 시작되는 사건으로 이후 고사카의 옛 연인이 납치되어 협박을 당하는 사건으로 진화한다. 이 사건의 진행에도 신지의 초능력이 깊게 개입하게 되면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약간이나마 보이기 시작하지만 첫 번 째 사건과는 달리 납치범을 지목하는 데에는 소설 종반부까지 기다려야 한다. 여기에 더해 두 사건의 진행 초반에 오다 나오야라는, 신지 보다 조금 더 강한 초능력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면서 독립적인 별개의 사건으로 여겨지던 두 개의 사건이 관련자들 간의 복잡한 관계로 인해 서로 떼어놓고 다룰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게 꼬이기 시작한다.
혹자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초능력이라든지 귀신과 같은 현실성 없는 소재의 빈번한 사용이 이야기의 개연성을 떨어뜨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재의 사용이 미야베 미유키의 무책임함에 따른 것이 아님은 그가 설정한 이야기 속의 인물들의 내외적인 고민과 싸움에 대한 넘치도록 충분한 사례들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용은 잠들다>에서도 미야베 미유키는 초능력이라는 다소 황당하게 보이는 소재를 이야기 구성에 있어 어려운 부분을 쉽게 뛰어넘는 지름길로 사용하기 보다는 그 설정 속에 녹아 있는 고민과 상처들을 통해 현실에 속한 문제들을 약간 우회하며 비춰볼 수 있는 틀로 사용한다. 다시 말하면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초능력과 같은 소재를 통해 이야기를 간결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의 설정 속에서 인간의 고민과 갈등을 풀어놓는, 그래서 비현실적인 소재가 장벽을 쉽게 뛰어넘는 수단이 아닌 오히려 이야기의 구성을 더욱 복잡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장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용은 잠들다>에서도 역시 가장 큰 고뇌는 내면의 용, 즉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신지와 나오야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고민은 현실의 사람들 내면에 살아 있는 다른 종류의 용에 대한 고민에 대해서도 훌륭한 반추의 소재가 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한 아이를 죽게 만든 사건, 의도적으로 한 여인을 죽이려 하지만 그 책임은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도록 조작하려 하는 또 다른 사건. 사건속에 깃든 비극은 남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남용하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비극은 자신의 한계를 반추하지 않고 부정하는 자의 오만과 회피에서 비롯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