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바위>의 소재로 사용된 <가나데혼 주신구라>. 일본의 국민적인 고전이란다. 물론 나로서는 이 소설을 통해 처음 듣는 이야기다. 주신구라는 1701년 아사노 나가노리라는 무사가 기라 요시나카라는 무사에게 칼을 들어 공격했으나 실패한 것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그 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아사노 나가노리는 할복의 명을 받고 바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1년 후 아사노 나가노리의 수하에 있던 47명의 무사가 자신들의 주군이었던 아사노의 복수를 하기 위해 기라 요시카나의 저택에 난입하여 복수를 갚는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47명의 무사는 다시 전원 할복의 명을 받고 죽음을 맞는다는 이야기다.
<흔들리는 바위>는 이 주신구라의 이야기 속의 한 인물의 원혼이 100년이 지난 후에 사람에게 씌어 일어나는 일을 그리고 있다. 소설은 초를 팔고 다니며 살고 있는 홀아비 기치지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기름통에 빠져서 죽어있는 한 여자 아이의 사건으로 이야기가 급하게 연결되며 진행된다.
사건을 풀어가는 인물은 오하쓰라는 열 여섯 살 소녀와 산학에 뜻이 있는 우쿄노스케라는 청년인데, 오하쓰라는 소녀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환상을 보는 눈을 갖고 있다. 기름통에 아이가 빠져 있는 환상을 본 것도 오하쓰고, 기치지로부터 나는 생선기름 냄새에 뭔가 있다는 직감을 하게 되는 것도 오하쓰다. 우쿄노스케의 직접적인 역할의 비중은 높지 않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다른 소설에서와 유사하게 주요 인물의 콤비 설정은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사건의 진상이 자세하게 서술되거나, 인물들의 고민들을 풀어 놓으며 이야기에 맛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이 소설의 소재가 된 <가나데혼 주신구라>라는 일본의 국민적인 고전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서인가. 막상 모든 사건의 실마리가 잡혀 사건이 해결되는 마지막 부분에 와서는 ‘겨우 이런 얘기였어?’라는 다소 시시한 느낌을 받았다. 주신구라라는 소재가 좀 더 익숙했고, 이미 다른 매체들을 통해 여러 번 접해본 이야기였다면 그 익숙한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고 풀어내는 재해석의 맛을 느낄 수 있었을 테지만 이 소설을 통해 처음 접하는 이야기였기에 미야베 미유키만의 독특한 시각과 재해석의 미묘한 맛을 느끼기 어려웠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새로운 해석에 무릎을 치고 유쾌해야 할 시점에 ‘아, 이런 이야기군’하며 고개만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아쉬움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 마지막의 유쾌함을 느끼기 어려운 제약을 제외하고는 소설 전체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한 문장 한 문장 정말 달콤하게 읽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고, 귀신이 쓰여 좀비 상태에 빠져 살인을 행하는 부분 등 지극히 일본적인 소재들이 소설 속에 가득하지만 이질적이거나 작위적이라 느끼지 못하고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건, 역시 미야베 미유키 고유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재밌게 읽었다. 역시 추천 하나 날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