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의 소설은 쉽게 읽히는 종류의 소설은 아닌 것 같다. 내용이 어려워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그보다는 소설의 내용이 읽는 이의 마음에 갈고리를 던져 꽂히거나 긁고 지나가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하기에 그런 것 같다. 남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신경숙의 소설은 그랬다. 읽어본 그의 소설이라고는 <외딴방>이 전부이니 사실 이렇게 신경숙의 소설에 대해 왈가왈부 할 입장은 아니겠지만, 그가 지난 시절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쓰여진 자전적인 성격이 강한 내용이 주는 우울함은 단지 픽션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 이상을 넘어갔다. <외딴방>을 읽은 지 2년 정도 후에 다시 한번 <외딴방>을 읽어봤지만 여전히 쉽지 않음을 확인했었다.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로 다가와 느껴지는 부담이 그렇게 차이가 클 줄은 몰랐다. 소설 속 암담하고 우울한 이야기에 감정이 고조되더라도 책을 덮고 난 후 시간이 흐르면서 망각 속으로 흘러가야 하는 것이 정상일 터인데, 신경숙의 소설은 책을 덮고 난 후에 오히려 더 감정을 고조시켜 지속시키는 그런 힘이 있었다.

신경숙의 소설을 소화할만한 충분한 마음의 버퍼가 마련되어 있지 않고서는 그의 소설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느껴졌기에 그의 소설은 <외딴방> 이후로 읽지 않고 있었는데, 몇 달 전 그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이 <Please Look After Mom>이라는 제목으로 영문 번역되어 미국에 출판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그 소식을 들을 때에도 별다른 관심을 갖진 않고 있었는데 출간 된 이후로 나름 미국 내 소설 시장에서 선전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더불어 이런 선전의 큰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번역의 quality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씩 귀가 얇아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번역을 했기에 이곳 저곳에서 호평이 들려오는 지 궁금했고, 미국 시장에 내놓는 그의 첫 작품이라면 그래도 좀 읽기에 부담에 덜 되는 이야기 아닐까, 마음에 버퍼가 없어도 소화가 가능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거의 10여 년 만에 신경숙의 소설 <Please Look After Mom>을 읽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굳이 내가 이 신경숙의 소설을 영문 번역판으로 읽어야 했는가 하는 의문이 가장 크게 남았다. 영문 번역의 quality가 높다 하지만, 영어 문장 해석하기에 급급한 나로서는 번역의 질을 따질 정도의 수준은 결코 되지 못했다. 일반 영문 소설을 읽을 때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문장들이니 미국인들이 먼 나라 한국의 알지 못하는 작가의 소설을 읽는데 있어 큰 부담감이나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높이 쳐줄만한 번역일 수 있겠지만 거꾸로 한국 사람이 읽기에는 오히려 답답한 면이 더 부각되는 듯 했다. 한참 책을 읽어가던 도중 인터넷 교보문고 사이트에서 국문 판 소설의 내용 일부가 제공되어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소설 속 엄마가 사투리로 맛깔스럽게 늘어놓는 이야기들과 영문으로 번역된 평범한 문장을 비교해 보면서 영문 판으로 읽고 있는 것을 크게 후회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종류의 글이던 원작자가 사용한 원래 언어로 쓰여진 것을 읽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기에 웬만하면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영문으로 쓰여진 원서는 번역판 보다는 원서 그대로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신경숙의 소설은 거꾸로 굳이 고생해가며 작가가 직접 써 내려간 문장을 버리고 번역된 문장을 택하는 우를 범해버렸다. 아무튼 교보문고 사이트에서는 국문 판과 영문 번역판을 묶음으로 판매하기도 하던데 굳이 둘 다 사볼 이유가 있나 생각이 든다. 원작인 국문 판을 번역한 영문판이 사전적 의미에서 완벽한 번역이라기보다는 읽는 대상의 문화적 차이를 고려한 번역이었기에 오히려 성공의 한 요인으로 평가 되기도 하고, 번역 quality에 대해 좋은 평가가 있는 것일 뿐 양쪽 문장을 비교해가며 보며 소위 영어공부를 할만한 텍스트는 아닌데 말이다.

소설의 내용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엄마라는 인물이 서울역에서 길을 잃고 사라져버린 사건을 중심으로 해서 딸, 아들, 남편 그리고 엄마의 관점에서 엄마라는 인물이 살아온 삶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보는 이야기이다. 문장 구조의 경우 일반적인 1인칭, 혹은 3인칭 서술방식과 달리 ‘You’를 문장의 주어로 삼는 서술방식이 사용되어 한동안은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특히 영문판으로 읽다 보니 뭔가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당황스러움을 느낄 정도로 해당 서술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2인칭 서술 방식이 아마도 읽는 이로 하여금 소설 속의 이야기에 더욱 긴밀하게 관련된 느낌을 받게 하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전혀 문학적이지 않는 나로서는 읽는 내내 시점이 헷갈리는 통에 좀 어려움이 있었다.

사라진 엄마를 바라보는 관점 중에 아들, 딸의 관점보다도 남편의 관점에 더 큰 공감과 애틋함을 느낀 것은 아마도 사라진 엄마에게 가장 큰 빚을 진 사람이 다름 아닌 남편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사라진 아내의 빈자리를 느끼면서 그 동안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잘못한 일들을 깨닫게 되는데, 그런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진 빚을 갚을 기회를 상실해버린 자의 자괴감에 가장 큰 공감이 되었던 것 같다. 또한 무엇보다도 엄마의 실종으로 인해 삶에 가장 큰 변화를 맞은 것 또한 남편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아직 덜 자란 자식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성인으로 다 자란 자식들의 경우 다 각자의 삶이 있을 터이다. 사라진 엄마를 그리는 자식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사라진 엄마 본인 또한 누구보다도 자식에 대한 마음이 애틋하게 그려지고 있지만, 아내가 사라짐으로 인해 가장 소외된 자는 남편인 것 같다. 작가 신경숙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부모에 대한 애틋한 마음에 더해 아내가 사라진 남편은 쭉정이에 지나지 않다는 점 또한 간접적으로나마 크게 느낄 수 있었다. (한국 남편들이여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아내에게 잘 합시다!)

혹시라도 이미 <엄마를 부탁해> 국문 판을 읽어본 분이 호기심으로 영문판 <Please Look After Mom>을 읽어보겠다는 경우라면 적극 추천하겠지만, 국문 판과 영문 판 중 한 권만 읽겠다 하는 분에게는 굳이 영문 판 보다는 국문 판으로 읽기를 권하고 싶다. 내게 신경숙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두 번은 읽어야 하는 것인가 보다. <Please Look After Mom>을 읽자 마자 한국에 들어가면 국문 판으로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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