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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정의’ 강의, 그리고 그의 책이 정확히 무슨 이유로 갑자기 한국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곳에 있는 미국 친구들에게 몇 번인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으니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일었던 붐은 아니었나 보다. 아무튼 한국에 머물렀던 지난 여름, 때마침 한국에 방문해 강의를 한다는 그의 소식을 각종 매체에서 접하면서 무슨 책이길래 이리 인기인가 하는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었다. 얼마 후 들른 서점에서 가장 먼저 그의 책을 찾아 약간 들춰봤지만 특별히 별다른 내용이 있을 것 같이 보이진 않아 결국 몇 장 들춰보다가 그냥 내려놓고 나왔다. (국내 출판되는 책의 경우 언제부턴가 글자 크기도 커지고, 줄 간격 및 테두리 여백이 넓어지면서, 기대를 하던 책도 막상 책을 펴 보면 조밀하지 않고 엉성하게 들어차 있는 글자에 그 컨텐츠까지 엉성할 것 같은 느낌을 주곤 한다. 이거 좀 어떻게 할 수 없나.)

미국에 돌아온 뒤에도 간간히 그의 책에 대한 내용을 접하며 그래도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지만 그래도 철학에 관한 책인데 나같이 얄팍한 수준의 관련 지식만 있는 사람이 영문으로 읽으며 이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쉽게 그의 책을 읽는 것을 망설여 왔다. 그러던 찰나 지난 연초에 EBS에서 그의 강의를 방송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적어도 한국어판으로 그의 강의를 듣고 난 후라면 영문판으로 읽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의 강의 동영상과 Kindle로 구입한 책을 틈나는 대로 병행해가며 보기 시작했다.

샌델 교수의 강의와 책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서 늘 궁금했던 점이 있었는데 그 뜨거웠던 인기가 무색하게 어디에서도 그의 강의나 책의 내용을 활용한 논의들은 거의 찾기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그의 강의와 책 타이틀에 대한 이야기는 무성했지만 그 컨텐츠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다뤄지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강의와 책을 보기 시작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추측할 수 있었는데 나의 추측인 즉슨, 비록 이 책이 교양서 수준의 정치 철학 영역에서의 정의에 대해 다루고 있고, 그 다루는 이론들도 관련 이론들을 간략하게 다루는 정도밖에 진행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 식히며 읽을 만한 수준은 훌쩍 넘어간다는 점이다. 12회로 구성된 샌델의 강의 영상만 하더라도 3~4회 까지는 그냥 드라마 보듯 편하게 보면서도 무슨 내용이 진행되고, 무엇이 논쟁의 요지인지 파악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 이후를 넘어가면서는 때론 귀를 기울여 들어도 쉽사리 논점을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들의 비율이 증가하기 시작한다.

그런 면에서 그의 강의 영상을 보며 대략적인 논점을 파악하고, 강의 영상만으로는 그냥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넘어가는 부분은 다시 그의 책을 통해 좀 더 세밀한 내용을 파악하곤 했던 점이 그가 다루는 정의론에 대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던 것 같다. 비록 강의 영상은 드라마 보듯 대충 보며 지나가지만, 그렇게라도 한번 접한 내용을 책을 통해 다시 접하게 되니 영문판으로 읽는 이유로 해석이 잘 안되어 헤매는 일은 거의 없었고, 영상과 책 중 어느 하나만 보았을 때보다 이해도 측면에서나 그 재미에 있어서 훨씬 나은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

샌델 교수는 그의 책을 통해 정의의 이론적 바탕을 크게 세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첫 번째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라는 용어로 알려져 있는, 사회 전체의 공익(utility) 혹은 안녕(welfare)을 최대화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정의라 규정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유의지론(Libertarianism)를 기반으로 하여 사회 내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하면서 또한 평등주의 원칙에 의거한 행위를 정의라 규정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사회 내 미덕(virtue)을 키우고 공공의 선(common good)을 장려하는 것을 정의라 규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크게 세 종류로 나누어진 정의론에 대해 샌델교수는 해당 이론의 기반을 제공한 정치철학자들의 이론과 함께 다양한 가상의 혹은 실제의 예들을 통해 해당 이론의 핵심과 의미를 짚고 또한 해당 이론들의 한계나 모순상황을 제공하며 다양한 관점의 논의를 이끌어 나간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먼저 하나의 상황을 제시하고 해당 상황에 처했을 때의 행동을 선택하도록 한다. 이 때 대다수가 선택한 행동이 공리주의 이론에 근거해 있음을 보인 다음, 공리주의 이론에 근거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을 추가로 제시하며 공리주의 이론의 한계를 보여준다. 같은 식으로 자유의지론에 대해 설명하고, 이를 보완할 평등주의 원칙을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를 다루며 현대의 정의론과의 차이를 보이고, 상충되는 부분을 제시한다. 그리고 가족애, 애국심, 공동체 의식과 같은 지금까지 다룬 이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상황을 제시하며 이를 설명할 논리적 기반을 제공하는 식으로 논의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그렇게 진행되는 샌델의 정의론은 후반부에 이르러 자신의 개인적 정의에 대한 기호는 사회 내 미덕을 키우고 공공의 선을 장려하는 쪽에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밝히며 이의 근거에 대해 서술하면서 동시에 앞선 논의들을 정리하며 마무리 된다. 이처럼 대체로 중립적인 입장에서 논의를 진행해오던 샌델의 강의는 후반부에 들어서며 샌델의 개인적 기호가 다소 노골적으로 노출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그의 책이 보수적 입장에 입각한 정의론에 손을 좀 더 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런 샌델 자신의 기호에 따른 논점에 대해서는 읽는 이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겠는데, 일단 자유의지론과 평등주의에 기반한 정의론에 비교적 마음이 좀 더 가는 나로서는 그의 논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다소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공동체주의가 엄연히 존재하고, 이를 정의의 한 부분으로 포함시키려 시도한 논의의 시점부터 의문의 여지가 남기 시작했다. 공동체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샌델은 여러 예들을 들고 있는데 그 중 가장 간단한 예로 물에 자신의 자식과 타인의 자식이 빠진 상황에서 오직 단 한명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구도 주저 없이 자신의 아이를 구하는 것을 택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자신의 자식을 구하기 위해 타인의 자식을 밟고 지나가는(해를 입히는) 조건이 아니라면 자신의 자식을 구한 부모의 행동은 정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그 어느 부모도 자신의 자식을 포기하고 남의 아이를 구하는 일은 없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내가 그 상황에 처했다 하더라도 나 또한 동일한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행동에 대해 모든 이로부터 정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인정 또한 받았다 하더라도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편히 잠들기 보다는 왠지 모를 죄책감 비슷한 것에 잠을 설칠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이러한 불편한 감정의 존재 가능성과 이에 대한 설명이 결여된 공동체주의가 과연 그리 쉽게 정의의 범주 안에 들어와야 하는 것인지 대해서는 의문이 남을 수 밖에 없다.

세가지 정의론 중 샌델 자신이 손을 들어준 공공의 선을 장려하는 정의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그 보수적 가치의 선의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또한 자유의지론에 근거한 정의론이 사람들 사이의 인간적 미덕의 가치를 평가절하 하거나 감소하게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심정적으로 한계를 그어놓은 선 내에서 논의를 마치려 하는 것 같아 다소 불편했다. 한 예로 동성간의 결혼의 합법성을 논하는 주제에서 동성간의 결혼까지는 그래도 결혼의 숭고한 가치를 찾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을 넘어가는 결혼(예를 들어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자기자신과의 결혼)의 경우, 논할 것도 없이 그러한 숭고한 가치를 찾을 수 없다는 가정하에서 동성간 결혼의 합법성을 인정하는 논리를 전개한다. 이처럼, 논리를 사용한 논의가 가능한 영역을 만들기 위해 정작 그 영역을 규정하는 테두리는 암묵적 동의 하에 비논리적 접근으로 행해지는 것이 그리 명쾌해 보이진 않았다.

샌델의 ‘Justice’를 읽고 있는 비슷한 시기에 함께 읽던 다양한 책들이 상당수 사회적 정의에 관한 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샌델의 책에서 다뤄진 다양한 논점들은 다른 여러 곳에서 다뤄지는 정의와 관련된 이슈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접근하여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특히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통일되고 일관된 나름의 철학과 논리를 갖고 있다 생각해 왔는데, 실상 다양한 이슈에 대한 판단의 근거가 경우에 따라 상이한 정의론에 바탕하여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경험은 내 자신의 철학과 논리에 대해 좀더 밑바닥부터 검토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었다 생각된다. 또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에도 그 기저에 깔려있는 기초적인 철학의 근거를 예측해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좀 더 발전적인 논의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누군가 주장하는 바의 논지가 위의 세가지 정의론 중 어느 것에 근거하여 세워졌는지 분별이 가능하다면, 그와의 발전적 논의를 하기 위한 첫 단계는 그와 전혀 다른 정의론에 근거하여 접근하기보다는 일단 그가 서 있는 정의론에 바탕을 두고 그 범주 안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쉽게 예를 들면 기독교에 대한 문제점을 논하는 경우에 기독교를 진리라 믿고 있는 사람에게 기독교는 진리가 아니라는 것에 근거한 주장보다는 기독교가 진리라는 같은 전제하에서 현재의 기독교의 문제점들을 논하는 것이 발전적 논의의 첫 출발점일 것이다. 그런 발전적 논의가 전제될 때 이후 기독교의 진리 유무에 대한 더 큰 범주에서의 논의도 그 다음 단계로서 검토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샌델교수의 'Justice'는 기초적 교양에 가까운 철학을 다루는 책이지만, 적어도 나에게 주는 의미는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로 컸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사회 이슈들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고, 토론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독을 꼭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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