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한국에서 보내고 다시 출국하며 함께 가져온 책인데, 결국 학기 중에는 읽지 못하다가 이제야 손에 들고 이틀 만에 읽어버렸다. 자서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판된 책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집필한 것이 아닌 노무현 대통령 사후에 유시민이 정리를 한 것이기에 ‘나’를 주어로 한 문장 구성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유시민의 설명에 따르면 검찰 수사가 노무현 대통령 주변을 옥죄어 오던 2008년 하반기 때부터 회고록 집필에 대한 마음을 정하고 준비해 왔고, 그 외에도 직접 기록, 구술한 많은 자료들이 있어 해당 자서전의 상당수 내용은 노무현 대통령 자신의 기록에 근거한다고 한다. 그래서 글은 ‘나’를 주어로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직접 쓴 것처럼 구성되었고, 그래서 ‘자서전’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생각지 못한 ‘나’를 주어로 쓰여진 글이어서 그랬나 보다. 갑작스레 떠난 그였기에 노무현 대통령 자신의 목소리로 그의 지나온 삶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린 것인데, 그래서 참으로 아쉬웠는데, 그 불가능한 일이 갑자기 실현된 것 같아 우선 너무도 반가웠다. ‘최양락의 재밌는 라디오’의 한 코너인 ‘대충토론’에서 줄곧 노무현 대통령의 성대모사를 맡아온 배칠수라는 사람이 있다. 그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틀 후 진행된 방송에서 성대모사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못하고 간 마지막 인사를 했던 것이 화제가 되고 많은 이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던 일이 문득 오버랩 되며 생각이 났다. (아래의 성대모사 클립 참조) 노무현, 그가 떠난 지 벌써 1년 반이 넘은 지금 인간 노무현을 떠올리며 아련한 최루성 감정을 끄집어 내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 생각해왔다. 이제는 그러한 살뜰한 감정선은 뒤로 살짝 놓아두고 정치인으로서 그가 이룩한 업적과 실패, 그의 한계를 평가하고 그의 정신을 이어가면서도 그를 넘어설 정치적 대안을 고민해야 하는 때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인간적인 그리움을 감출 수는 없었나 보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들려주는 것 같은 이야기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어 버렸다.
서술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일대기를 정리하는 글이기에 큰 틀은 시간적인 순서를 놓고 기술하고 있지만, 큰 단락 내의 소 단락 사이에는 주제별로 다시 정리가 되며 시간의 흐름이 꼬이는 경우가 종종 보였다. 2000년도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1999년도 당시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하고 다시 2001년으로 뛰어 넘는 식의 이야기 진행이 있어 다소 혼란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직접 저술한 자서전이 아닌 사후 타인에 의해 정리된 자서전의 한계도 뚜렷하게 보였다. 아마도 이는 정리자인 유시민이 책의 서문에서 밝힌 대로 최대한 노무현 대통령이 남겨놓은 기록을 사용하고자 한 데에서 비롯한 것일 터이다. 상당 부분에서 사건의 서술이 너무 무미 건조하게 이루어진 부분들이 보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해당 사건들을 겪으며 느꼈던 감정에 대한 묘사가 많이 부족한 것이 이러한 서술의 건조함을 유발하였는데, 이는 각색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꾸미기보다는 가용한 자료들을 최대한 그대로 사용하고, 꾸미지 않고자 하는 정리자의 의도에서 그랬다고 보여져 납득할만 했다.
내용에 있어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평소 성격답게 자신의 지난 삶을 이야기하며 옳다고,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러한 긍정의 감정의 표현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고, 잘못했다 생각되는 일들이나 후회스러운 일들에 대해서는 미화하여 표현하기 보다는 잘못과 실수를 수긍하는 식의 서술로 되어있었다. 특히 잘못하거나 후회스러운 일에 대해 서술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의 실수라던지 아쉬움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당시에 그렇게 해야 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핑계나 방어를 위함이기 보다는 당시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기에 나와 같이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이 자서전을 읽는다 하더라도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인해 판단이 흐려져 그의 지나온 삶 전부를 미화하고 영웅시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 책은 노무현이라는 한 인간을 너무 좋아하고, 정치인으로서 그가 꿈꾸었던 것들에 대한 그의 진심에 여전히 감동하는 사람에게도 정치인 노무현의 한계와 과오를 따져볼 수 있는 계기와 그를 넘어선 그 다음의 것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여겨진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귀의 첫 세 문장을 다시 곱씹어 본다. 지금까지는 세 번째 문장의 ‘앞으로 받을 고통’이 자신이 겪는 고통을 말하는 것이라 무심결에 생각해 왔는데, 이 문구를 자서전 속에서 다시 읽어 보며 그가 마지막 남긴 글에는 자신이 겪을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고 오직 자신으로 인해 남들이 받을 고통에 대한 소회만 적혀있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했다. 마지막으로 남긴 이 글 외에는 떠나기 전 마지막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과 감정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는 것보다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고통 받을 타인의 안위를 더 중시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라 봐도 좋을 것 같다.
자신의 생존이 곧 타인의 고통을 뜻하는 상황이 노무현 그에게 얼마나 괴로움이 되었을 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그의 지난 인생 이야기를 보면 지켜보는 타인조차 가슴을 탁 막히게 할 정도로 노무현을 옥죄던 사건들 속에서도 정작 노무현 본인은 적어도 밤에 잠을 청하는 데 문제가 없어 주변인들이 헛웃음을 지을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떠나기 전 한참 동안이나 밤에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괴로워했다고 하니 그 괴로움의 크기가 얼마였을지 짐작해볼 뿐이다. 또한 떠나기 전 그는 대통령의 꿈을 꾸고 대통령이 된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했다고 한다. 남을 돕기 위해 발을 디디게 된 것이 정치였는데 오히려 그 결과로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을 보며 자신의 정치가로서의 삶을 실패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노무현의 자서전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 인간이 삶을 바쳐 노력했던 과정을, 그리고 그로 인해 이룰 수 있었던 업적과, 과오와 절망의 순간 모두를 보여주고 있다. 권력의 사악한 속성을 생각할 때, 그리고 아직도 성숙과는 한참 먼 국내 정치현실을 생각한다면 앞으로도 이 노무현이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바쳐야 할 노력과 고통, 과오와 절망의 크기는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것 보다 몇 수십 배는 더 클 지도 모른다. 노무현 정신을 이어받은, 노무현보다 더 큰 이가 나온다 한들 그 사람이 모두 짊어지고 갈 수 있는 무게가 아니다.
결국 노무현의 자서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을 이겨내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어느 영웅 한 사람이 아닌 이러한 꿈을 꾸는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 짐을 지고 걸어갈 때 가능하다는 힌트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렇게 무거운 짐을 나누어 지고 함께 걸어갈, 그래서 각자의 짐은 견딜만한 수준으로 작아지는 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수많은 자발적인 시민의 무리를 이끌어 낸 것 만으로도 노무현 그의 인생은 실패가 아닌, 그가 꾼 사람 사는 세상을 이루기 위한 성공의 발판이라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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