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 리더십 관련 과목의 한 수업에서 한 시간 동안 이 영화의 내용을 다뤘던 적이 있다. 해당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가 고급 영어 사용을 추구(?)하는 러시아 출신의 사람이었기에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가 약간 어려웠고, 논쟁이 이뤄지는 영화의 몇몇 장면을 무작위적으로 틀어주어 더더욱 이해하기가 어려웠었다. 뭔가 흥미로운 내용인 것 같은데 이해가 안되니 답답함은 더해지고, 결국에는 수업 후 교수에게 해당 DVD를 빌려줄 수 없는 지 묻고는 며칠간 DVD를 빌렸었다. 빌린 DVD를 컴퓨터에 저장해놓은 지가 벌써 1년이 지났는데 이제야 이 영화를 봤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인 것으로 기소된 한 소년의 재판의 배심원을 맡게 된 12명의 배심원이 재판 후 최종 판결을 위해 회의실에서 판결을 위한 토론을 벌이는 것이 큰 줄거리다. 영화 반과 끝 약간의 부분에 재판정과 재판소의 장면이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영화의 95% 이상은 해당 회의실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보여주고 있다. 무슨 흥미로울 만 한 이야기가 진행될까 약간 의문스러운 구성이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생각보다 박진감이 넘친다. 회의실에 들어선 배심원들의 첫 유/무죄에 대한 투표 결과는 11명이 유죄의 의견을 내고, 단 한 명만이 무죄(Innocent가 아닌 Not Guilty의 의미를 말하는 ‘무죄’를 말함)의 의견을 내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영화의 마지막은 12명이 배심원 모두가 무죄 의견을 내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이 정도면 흥미로울만 하지 않은가.
절대 다수가 유죄임을 주장하는 상황(11 vs. 1) 에서 만장일치로 무죄임을 결론 내는 상황(0 vs. 12)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12명 배심원들간의 다양한 심리적인 갈등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특히 이 영화의 묘미라 할 수 있는 것은 유죄라 판단한 사건에 대해 무죄로 판단이 바뀌게 하는 요소들이 단지 유죄라 판단했던 당시에는 없었던 새로운 증거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전에 고려하지 않았던 새로운 증거나 정황이 주어진다면 의견이 바뀌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단순한 추가 증거물의 제시 외에도 동일한 사건의 재해석의 가능성을 제기하며 사람의 이성적인 판단의 기저에 편견이라는 것이 얼마나 짙게 깔려있는 지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 논리적 추론의 결과가 바뀔 수 있는 요인은 추가적인 정보일 수도 있지만, 편견의 제거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아무데서나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던 살해도구로 쓰인 칼이 실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종류의 칼이라는 사실이, 추가적인 정보에 의한 판단 변화의 가능성이라 한다면 살인사건 당시 소년은 영화관에 있었다 주장했지만 정작 영화의 제목도, 배우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기에 신뢰하기 어려운 알리바이라 여겼던 것이, 사실상은 신뢰할만한 알리바이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으로의 전환은 편견을 걷어냄으로 인한 의견 변경의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1대 1의 압도적으로 한 쪽으로 의견이 몰린 상황에서 한 사람 한 사람씩 추가적인 토론을 통해 의견을 바꿔가는 과정이 작위적이지 않게 느껴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를 찾는다면, 영화를 통해 계속 이어지는 토론의 내용 자체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12명 각각의 인물의 특성을 다르게 설정해놓아, 특정 상황에서 특정인이 의견을 번복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만든 점이 더 큰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끝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유죄를 주장하던 최후의 1인이 마침내 무죄로 의견을 번복하는 장면은 나로서는 약간 어색하지 않았나 싶다. 의견을 번복하기 바로 직전 갈기갈기 찍은 사진과 뭔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잘은 모르겠다. 내가 짚어내지 못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1957년에 만들어진 흑백영화이긴 하지만 한번쯤은 볼만한 영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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