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예배시간에 대표기도를 하는 분들을 보면 심심치 않게 나오는 감사의 기도 내용이 있다. 약간씩 다르게 표현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을 믿는 대통령을 주심에 감사한다’는 내용이다. 감사와 더불어 이어지는 기도에는 대통령이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하고 믿음 안에서 정치를 할 수 있길 바란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선거철에는 약간 내용만 바뀌어, 기도 혹은 설교를 통해 ‘이왕이면 하나님을 믿는 지도자를 뽑자’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왕의 경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왕이었는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왕이었는지에 따라 그 업적과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걸 자주 접해서인가? 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기도와 설교는, 그간 예수 믿는 사람, 장로의 직분으로 섬겼던 사람이라 해서 기쁜 맘으로 뽑았지만 소위 깽판 치는 것으로 끝난 지난 수십 년간의 경험을 통해서도 탈색되지 않고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교회내의 논리가 되어버린 것 같다.
정치 지도자를 뽑으려면 정치를 가장 잘할 것 같은 사람을 뽑아야 하고, 평가의 기준 또한 그에 걸맞은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을 섬기는 위치에 올라갈 사람을 뽑아야 한다면 애매하기만 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정치가’ 보다는 오히려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가’를 뽑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왕이면…’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여가며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정치인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 중의 하나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나는 정말 불편하다. 그냥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나도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이를 공개적인 대표 기도라던지 설교시간을 통해 말할 만큼의 가치와 무게가 있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위와 같은 기준을 정치에 적용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옳지 않다 생각하는 것은 단지 지난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뿐만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잣대를 드러내야 하는 정치판에서는 그런 종교적, 감성적 잣대를 들어 평가를 하는 분들이, 그 보다는 덜 논리적이어도 되고 덜 이성적이어도 큰 문제가 없는 부분에서는 그러한 종교적, 감성적 잣대를 들어내지 않는 모순적 행동에서 오는 불신이 큰 몫을 하고 있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 말하면 이렇다. 거의 동일한 물건을 파는 복수의 판매자가 있을 때 보통은 같은 가격이라면 품질이 더 좋거나 혹은 비슷한 품질이라면 가격이 저렴한 것, 아니면 가까운 곳에 있어 접근성이 좋은 곳에서 물건을 구매하게 마련이다. 그 누구도 판매자가 하나님을 믿는지를 따져가며 물건을 사지 않는다. 학교나 학원에 자식들을 보낼 때에도 어느 선생님이 더 잘 가르치는 지를 따질 뿐이지 ‘이왕이면 하나님 믿는 선생님에게 보내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이런 일상생활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이 오히려 더하니 조심해야 한다’라는 말이 더 힘을 얻는 것 같다. 일상 생활의 작은 이익 앞에서는 ‘하나님 믿는 대통령’을 구하던 때와 같은 대의는 사라지고 조금이라도 이익을 더 취할 수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만이 살아 숨쉰다. 한마디로 ‘이왕이면 하나님 믿는 사람’이라는 잣대를 정치지도자를 선택하는 것 이외의 일상 생활에 적용하는 것을 찾아보기는 정말 힘들다.
아니 그런 일상생활에서의 사적인 이익 추구가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기업이 도덕적으로 문제 없는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도록 감시하고 독려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를 일단 제외하고 이야기한다면, 일차적으로는 상품의 질, 가격과 서비스의 만족도를 따져 개인에게 가장 이익을 가져다 주는 구매 방식은 가장 이성적인 방법이다. 이런 일차적인 이익 추구를 넘어 혹시 불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기업에 대해 견제를 하는 것이 물론 필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이익 추구를 위한 일차적인 평가 잣대 그 자체를 놓고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단순 이익 추구 이상을 넘어 대의를 같이 추구하는 다음 단계가 있지만 단순 이익 추구 자체를 부정할 만한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는 ‘하나님 믿는 사람’이라는 잣대를 사용하지 않던 사람들이, 정치 지도자를 뽑는 경우에 있어서는 ‘하나님 믿는 사람’이라는 잣대를 사용하는 것을 그래도 최소한 사적인 이익 추구를 포기한 숭고한 대의적 뜻에 의함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니다. 나는 이러한 잣대가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사적인 이익 추구의 욕구의 수준을 넘어선 좀 더 노골적인 이익 추구라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 제품의 질과 가격, 서비스를 따져 이익이 가장 큰 것을 선택하는 것처럼, 정치세계에서도 누가 내가 옳다 믿는 신념과 철학을 실 생활에 뿌리내리게 할 것인가를 따져 선택을 하는 것이 일차적인 방법일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해당 정치인의 양심과 정직성 등을 따져보는 단계까지 고려한다면 그 이상 나을 것이 없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기준은 그러한 이성적이고 양심적인 기준에 의한 이익 추구와는 관계가 없을 뿐더러 보다 노골적인 집단적 이익 추구의 모습을 보일 뿐이다.
잘나가는 고등학교 동문회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동문 중의 한 사람이 중요한 위치의 후보중의 하나라 생각해보자. 으레 해당 동창들 사이에서는 ‘우리 XX고 동문인 YYY가 뽑힐 수 있도록 합시다’는 말이 나오게 된다. 왜 다른 후보가 아닌 XX고 동문이 뽑혀야 하는 것일까. 단순히 고교 시절 함께 했던 추억이 있고 그의 사람 됨됨이를 알고, 또 개인적인 친분이 있기에 그런 것일까?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주저 없이 동문 후보인 YYY를 뽑으면 된다. 별로 문제 없다. 하지만 이러한 독려가 다수의 동문을 향할 때에는 ‘우리 동문이 뽑히면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이익이 될 것이다’라는 집단적 합의가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다른 후보 대신 동문 후보를 뽑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식의 독려가 얼마나 유치한 수준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고등학교 동문회의 경우와 완벽히 일치한다 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을 믿는 대통령’,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도자’라는 것도 결국은 고상하고 거룩한 껍데기를 걸치고 있기는 하지만, 알고 보면 그 어떤 것보다도 노골적인 집단의 이익 추구의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개인적으로 대통령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길 바라고, 하나님을 믿는 정치 지도자가 되면 막연하게나마 더 잘하겠지 하고 생각하는 수준은 내가 뭐라 하지 않겠다. 팔이 자연스레 안으로 굽는 것 자체까지 내가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고, 개인의 신앙의 양심에 따라 개인적 진실함에서 비롯된 바램까지 뭐라 할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말들이 대중기도를 통해, 설교를 통해 이뤄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거룩함이라는 탈을 쓴 노골적 이익 추구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간의 숱한 실패의 증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조건을 이리 떳떳하게 내세울 수 없을 것이다. 겉으로는 하나님 두려워하는 지도자가 이 나라를 정의롭게 다스리길 바란다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 믿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적어도 교회라는 집단에 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의한 것이다. 이보다 더 세속적인 기준에서의 판단도 없다.
이제는 ‘하나님을 믿는 대통령’,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도자’같은 식의 기준을 판단의 근거로 사용하거나, 감사의 이유로 사용하는 것은 그만하자. 엄연히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기독교 단체장을 뽑는 것도 아닌 나라 전체를 아우르는 지도자를 뽑는 데에는 보편 타당한 기준만으로도 제대로 판단만 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무조건 우리편이 되어야 한다, 이겨야 한다는 식의 태도는 이제는 가장 말초적인 스포츠 영역에서도 사실상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국민을 섬긴다고 해놓고는 국민을 두려워하기는커녕 국민을 가르치고 다스리려고만 하는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만으로도 열받고, 게다가 그런 사람이 기독교 장로 출신이라는 것으로 쪽팔려 하는 사람도 엄연히 있다. 그런 와중에 하나님 믿는 지도자에 감사한다느니, 하나님 믿는 사람을 뽑자느니 이런 말은 그냥 집에서 혼자 골방에서 혼자 기도하면서 할지언정 청중 앞에서 대놓고 말하는 것은 그만 좀 하자. 그게 싫다면 아예 다음 선거부터는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모든 선거에서 좌파던 우파던 무조건 하나님 믿는 사람을 골라 찍고, 아이스크림 하나 살 때에도 하나님 믿는 가게에서만 사고, 주식도 하나님 믿는 회사에만 투자를 하던지 해라. 그런 사람이 하는 청중기도와 설교라면 그래도 인정하겠다.
사실상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에 하나님 갖다 붙이는 거, 그거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고 진노하시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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