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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artexpertswebsite.com/pages/artists/garofalo.php>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이야기는 일면 간단해 보인다. 매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쉽게 들을 수 있는 아기 예수의 탄생의 이야기는 마치 한편의 동화 속 이야기처럼 쉽게 이해된다. 자기 몸조차 가눌 수 없는 아기 예수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그의 가르침도, 그가 했던 일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예수의 가르침과 행동을 해석하고, 이를 자신의 삶에 적용할 방법을 찾는 것을 모범적 성경읽기의 방법이라 생각한다면, 예수의 탄생 이야기는 이러한 부담감 없이 편한 마음으로 해당 본문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 중심에 예수가 있긴 하지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주체는 아니다. 메시아의 운명을 타고 태어났음을 보이는 크고 작은 사건들과 증거들이 예수 탄생의 이야기를 둘러싸고 있지만, 일단 지금은 귀여운 아기 예수 이야기 아닌가. 그가 커서 그리스도가 되는 무엇이 되든, 갓 태어난 아기의 이야기는 동화처럼 포근하다. 별로 심각할 것 없어 보인다.

비록 예수의 탄생을 그리고 있는 이야기 그 자체는 동화처럼 쉽게 읽히긴 하지만 그 속에 담겨진 의미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예수뿐만 아니라 역사속의 수많은 중요한 인물들에 대해 누군가 그 인물들의 탄생의 이야기를 서술할 때에는 그 안에 그 인물의 인생 전부를 투영하는 이미지를 넣게 마련이다. 한 나라를 살리는 위대한 인물에 대해 이야기 할 때에는 탄생하던 때 그 집 주변에 학이 날아다녔다든지, 하늘에 상서로운 기운이 나타났다든지의 이야기가 나오고, 극악무도한 자의 탄생시에는 까마귀가 울었다든지, 불길한 징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실제 그런 일들이 탄생 시에 일어났는지의 유무는 다른 글에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일단 중요한 인물의 탄생의 이야기 속에는 해당 인물의 삶 전체를 바라보는 글쓴이의 의도가 유/무의식간에 포함되게 마련이라는 점, 그러기에 그러한 의미를 찾아보는 일은 무척 중요한 일이라는 점만 지적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서 성경은 마태복음에 하나, 누가복음에 하나 이렇게 두개의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마다 이를 서술한 이의 예수의 삶을 바라보는 해석이 녹아들어 있음을 생각한다면 단 하나의 이야기보다 두가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될 터이니 예수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이에게는 다행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예수의 탄생에 대한 두가지 다른 이야기가 있다고?
마태복음에 나온 탄생의 이야기와 누가복음에 나온 탄생의 이야기가 다르다고?
두개의 복음서에 실려 있긴 하지만 둘 다 똑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탄생의 이야기에 대해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수십년간 신앙생활을 하며 익숙하게 배워온 것 중의 하나는 같은 이야기를 성경의 다른 곳에서 복수로 서술하고 있을 때 이를 통합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늘 이런 식으로 성경의 이야기를 접하다보니 같은 사건에 대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본문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보충해주고 있다는 식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차이가 복수의 이야기 사이에 존재하지만 이런 부분은 이미 통합된 인식의 틀에 걸러 보이지 않게 된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통합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것에 있어 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통합의 과정에서 원래 각 이야기가 담고 있던 의미를 놓치게 된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복수의 서술은 각기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각기 다른 이야기를 통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서로 다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복수의 이야기를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경우, 실제 각각의 서술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상당수 손실 또는 훼손될 수 밖에 없다.

짜장면이 제일 맛있다고 서술하는 글과 짬뽕이 제일 맛있다고 서술하는 글은 나름대로의 서술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과연 짜장면이 가장 맛있는지 짬뽕이 가장 맛있는지 아니면 그 둘도 아닌 탕수육이 가장 맛있는지를 논하는 것은 다음 단계의 이야기이다. 일단 그 전에, 각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위해 사용한 근거라던지 서술 방식등을 통해 다양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다. 하지만 이를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해서 ‘짜장면도 맛있고, 짬뽕도 맛있다’라는 글로 재구성 한 후에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각 글이 담고 있던 독특한 시각들, 의미 전달 체계는 사라지게 되고, 또 이것도 저것도 아닌 글이 되어 버릴 뿐이다. 이런 통합적 이야기 재구성 방식은 아마도 성경에는 한치의 오류도 없다는 아니, 한치의 오류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성경의 해석 방식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성경의 많은 저자들이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들을 훼손하는 주범중의 하나라는 사실은 아이러니이다.

마태와 누가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상당히 다르다. 마리아의 동정녀 잉태라던지, 예수의 출생 장소가 베들레헴이라던지, 예수의 어린시절 이후 나사렛에 살았다는 점등 공통적으로 서술되는 배경이 있긴 하지만 그 외의 내용에 있어서는 마태복음에는 없는 이야기가 누가복음에 있거나, 누가복음에는 없는 이야기가 마태복음에 있거나 하는 식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한 서로 양립이 불가능한 상호 모순의 이야기도 발견할 수가 있다. 통합적으로 재구성된 이야기에 이미 오랫동안 익숙해온 사람에게는 이러한 차이가 쉽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겠지만 두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기 시작한다면 무척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조금씩 알게 될 것이라 생각이 든다.

예수의 탄생이라는 비교적 짧은 두 이야기간에 차이가 있으면 얼마나 차이가 있고, 모순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다. 아래의 ‘The First Christmas’는 내가 지금 흥미있게 읽고 있는 예수의 탄생에 관한 책인데, 두꺼운 책 한권 전체가 이 짧은 예수 탄생의 이야기를 놓고 정말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차츰 정리하게 될 것이라 생각되고, 여기에서는 마태와 누가의 두 이야기속의 간단한 차이에 대해 언급해보는 선에서 끝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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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태어난 곳은 어디인가?’ 라는 질문에 아마 상당수는 쉽게 ‘베들레헴’이라 말할 것이다. 또한 ‘예수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은 어디에서 살고 있었는가?’ 라는 질문에도 상당수는 ‘나사렛 아닌가?’라고 생각할 것이라 예상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예수 탄생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호적 조사를 위해 베들레헴으로 떠나는 요셉과 만삭의 아내 마리아의 그림이 그려지고, 도착한 베들레헴에서 머물 곳이 없어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와서 유년시절을 보내는 예수까지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예수의 탄생이야기이다.

마가복음에 따른다면 위의 답은 맞다. 누가복음 2장 4~5절에 보면 나사렛에서 살던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등록을 위해 베들레헴에 갔다고 서술하고 있다.(주1) 이후 이야기를 계속 읽어보면 요셉과 마리아는 정결예식을 위해 예루살렘에 잠시 들렀다가 2장 39절에 따르면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갔다고 서술하고 있다.(주2)

하지만 마태복음은 다르게 서술하고 있다. 마태복음은 예수의 탄생을 서술하며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호적등록을 하기 위해 잠시 머물던 곳이 아닌 정착해서 살고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미 통합적 이야기 구성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베들레헴에 요셉과 마리아가 정착하여 살고 있었다는 말이 억지처럼 들리게 된다. 그리하여 다양한 설명을 부가적으로 붙여가며 마태복음에서도 요셉과 마리아는 누가복음의 서술과 마찬가지로 베들레헴을 임시 방문했을 뿐이라 주장한다. 동박의 박사들을 인도한 별이 멈춘 집에 대해서도 이 집이 바로 임시 거처라는 이야기, 마구간이 아닌 집에 머물고 있는 것에 대해서 시간이 지나 방이 비어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는 이야기등 여기에서 다 언급할 수 없는 많은 해석들이 있다. 하지만 마태복음의 예수탄생에 대한 본문을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처음으로 읽는다고 해보자. 그런 심정으로 다시 본문을 읽어보면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에 잠시 머문 것이 아니라 정착해서 살고 있다고 읽혀짐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가복음의 서술과 마태복음의 서술간에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생각하는 사람에겐 여전히 마태복음의 서술도 베들레헴이 예수의 부모가 정착해서 살고 있다 명확하게 말하지 않고 있기에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더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몇가지 힌트를 더 얻을 수 있다. 마태복음 2장에 보면 헤롯이 동방 박사에게 속은 것을 알고 베들레헴 근처 지방의 아이들을 죽이려 하고,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이집트로 피하게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부모와 아기 예수는 이집트로 피신하여 상당기간 그곳에 머물렀음을 알 수 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 탄생 후 정결 예식을 치르기 위해 예루살렘에 잠시 들렀다 바로 살던곳 나사렛으로 돌아간 것으로 되어있지만 마태복음에서는 상당기간 이집트에서 머물렀다고 서술하고 있으니 일단 여기에서도 두 복음서간의 모순된 이야기를 찾을 수 있겠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이미 모든 걸 끝내고 나사렛에 돌아가서 살고 있을 그 시기에 마태복음에서는 그들이 이집트에 피신하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다시 마태복음으로 돌아오면 이집트에 머물고 있던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나 헤롯의 죽음을 알리며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라 지시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주3) 이어지는 구절을 보면 천사의 지시를 받고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가던 요셉은 아켈라오가 헤롯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 했고, 이에 천사가 다시 꿈에 나타나 갈릴리 지방 나사렛으로 가서 살도록 지시했다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주4) 이 본문에 따르면 요셉과 마리아가 정착해서 살고 있던 곳은 누가복음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나사렛이 아닌 베들레헴이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통합적 이야기 재구성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여기에서 다시 이집트로 피신해 있다가 다시 돌아오던 곳이 이스라엘 땅, 유대 땅이라 되어 있지 베들레헴이라 명시되어 있지 않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살던 곳이 나사렛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분명하고, 이는 누가복음의 서술과 일치하지 않음은 명백하다. 누가복음에서는 요셉과 마리아는 이미 나사렛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지만, 마태복음에 따르면 요셉과 마리아는 이집트로 피신해있던 기간 이후에 다시 살던곳으로 가길 요셉이 두려워 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천사가 차선책으로 나사렛이라는 동네로 들어가 정착할 것을 지시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말하자면 요셉이 돌아가길 두려워하지만 않았어도 마태복음의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아기예수는 나사렛에 가서 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두 복음서간의 차이는 사실 미미한 것 중의 하나일 뿐 더 많은 차이들을 찾아 볼 수 있지만 이는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 글에서 간단하게 다룬 두 복음서 간의 차이만으로도 예수 탄생의 두 이야기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려 했다는 것, 그러기에 이를 각각 독립적으로 분석할 때 저자들의 각기 다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개론적으로나마 설명했다 생각된다.

이전 글에서도 매번 그랬고 앞으로도 자주 언급하겠지만, 이러한 성경의 오류라던지, 모순은 일차적으로는 성경이 담고 있는 진리의 가치 유무/정도를 판단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러한 요소들이 성경이 담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데 있어 기존의 일반적인 사고의 틀에서는 걸러지고 왜곡되고 훼손되어진 것들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찾아가는 여정에 있어 좋은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전의 틀 즉, 성경의 완벽성에 대한 신념을 깨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지금도 완전히 깨지지 않았다 볼 수 있다. 이 신념의 틀은 내가 기독교라는 신앙을 진지하게 따르며 갖게된 여러 신념의 틀 중에서 가장 깨기 어려웠던 것이고, 깨기 전에는 내 신념을 담는 가장 순전하고, 흠 없는 그릇이라 생각했던,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기독교 신앙이 담고 있는 진리를 왜곡해서 받아들이게 하는 비기독교적인 틀이 아니었나 생각하고 있다. 매번 글에서 조금씩 언급하겠지만, 이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기나긴 글들을 통해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놓으면서, 그리고 동시에 내 생각도 정리/발전시켜 나갈 때, 오해 없는 의미 전달 또한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1) 눅 2:4~5 - 요셉은 다윗 가문의 자손이므로,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에 있는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자기의 약혼자인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올라갔다.
(주2) 눅 2:39 - 아기의 부모는 주의 율법에 규정된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갈릴리에 있는 자기네 고향 동네 나사렛에 돌아왔다.
(주3) 마 2:19~20 - 헤롯이 죽은 뒤에, 주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서 말하기를 "일어나서, 아기와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그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하였다.
(주4) 마 21~23 - 요셉이 일어나서, 아기와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요셉은, 아켈라오가 아버지 헤롯의 뒤를 이어 유대 지방의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 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는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서, 나사렛이라는 동네로 가서 살았다. 이리하여 예언자들을 시켜서 말씀하신 바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 이 글은 Erhman의 'Jesus, Interrupted', Borg 와 Crossan의 'The First Christmas'를 읽으며 그 안에서 다뤄진 내용을 나름의 생각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과 논리도 포함되어 있기에 책 내용의 단순 인용은 아니지만 그래도 간단하게 출처에 대해 명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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