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초등학교 시절부터 열심히 교회를 다니며 키워온 믿음이다. 정말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신실한 신앙인이었다 말할 자신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다니고, 열심히 배우며 자라온 행복한 기억이 가득한 교회 생활이었다. 멋모르고 마냥 즐겁게 다니던 주일학교 시절을 지나, 중등부 수련회에서 인격적으로 만난 하나님으로 나름의 삶의 방향을 크게 바꿀 수 있던 기억들까지, 행복했고 감격스러운 추억들이 한가득이다. 기도할 때 눈 뜨면 지옥가는 줄 알던 초등학생의 어린 믿음, 공산당이 내려와 총을 겨누어도 예수님을 부인하면 안된다는 주일학교 선생님의 가르침에 공산당이 진짜 내려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던 다소 유치한 믿음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며 신앙은 꾸준히 성장해왔다.
대학생이 되어 머리가 커지고, 생각도 많아지면서 잠시 방황하던 시절에 만난 프란시스 쉐퍼. 그의 전집은 내 믿음을 마치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이 다시는 흔들리지 않을 굳건한 신앙철학을 갖도록 해주었다. 그가 말하는 바에 따르면 성경은 단지 종교생활에 대한 해답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의 전반의 모든 곳에 해답이 되는 진리의 말씀이었다. 세상의 그 어떤 철학과 맞붙어도 지지 않을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성경의 진리였다. 단지 믿음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이성적 사고 판단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는 쉐퍼의 철학은 정말 나를 완전한 자유함으로 이끌어 주었다.
쉐퍼의 기독교 철학의 가장 기본은 성경의 진리됨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성경엔 조금의 오류도 있어서는 안되고, 성경에 나오는 그 어떤 사건도 역사적으로 이 지구상에서 특정한 장소, 특정한 시간에 실제로 일어난 실제의 사건이어야 했다. 창세기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서로 양립이 불가능한 두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고, 다른 문화의 창조 설화와의 유사점들을 통해 설화 혹은 비유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 누가 말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주장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이는 순간 기독교의 진리는 모두 무너져 버리게 된다는 것이 쉐퍼의 기본 철학이었다. 당연히 쉐퍼가 옳았다. 성경은 조금의 오류도 있어서는 안되는 거였다. 아무리 믿기 힘들어 보이는 일이라 하더라도, 다소 아귀가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성경은 절대적으로 옳아야 했다. 그리고 옳았다. 쉐퍼는 그의 방대한 분량의 전집을 통해 이를 모든 경우에 대해 역설하며 쉐퍼가 주장하는 기독교철학이 그냥 단순히 억지 고집 부리기가 아닌 논리적, 이성적으로 완벽하다는 논증을 이끌어냈다. 난 그 쉐퍼의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기독교 철학의 반석 위에서 그동안 참된 자유를 누려왔다.
쉐퍼의 기독교 철학의 가장 기본은 성경의 진리됨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성경엔 조금의 오류도 있어서는 안되고, 성경에 나오는 그 어떤 사건도 역사적으로 이 지구상에서 특정한 장소, 특정한 시간에 실제로 일어난 실제의 사건이어야 했다. 창세기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서로 양립이 불가능한 두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고, 다른 문화의 창조 설화와의 유사점들을 통해 설화 혹은 비유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 누가 말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주장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이는 순간 기독교의 진리는 모두 무너져 버리게 된다는 것이 쉐퍼의 기본 철학이었다. 당연히 쉐퍼가 옳았다. 성경은 조금의 오류도 있어서는 안되는 거였다. 아무리 믿기 힘들어 보이는 일이라 하더라도, 다소 아귀가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성경은 절대적으로 옳아야 했다. 그리고 옳았다. 쉐퍼는 그의 방대한 분량의 전집을 통해 이를 모든 경우에 대해 역설하며 쉐퍼가 주장하는 기독교철학이 그냥 단순히 억지 고집 부리기가 아닌 논리적, 이성적으로 완벽하다는 논증을 이끌어냈다. 난 그 쉐퍼의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기독교 철학의 반석 위에서 그동안 참된 자유를 누려왔다.
Ⅱ.
암에 걸린 것을 알게되는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의 5단계를 거친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난 수년간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해서 성경속의 크고 작은 오류라던지, 성경속의 사건의 역사적 실재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들을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나온 반응은 무시 즉, 부정이었다. 깊게 생각해볼 가치도 없는 것이었고, 괜한 호들갑에 애써 관심 가져줄 것 없다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다른 시각에 대한 흥미를 갖고 있기에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고 그래도 기회가 될 때마다 꼭꼭 챙겨보긴 했지만 이곳 저곳에서 단편적으로 접하는 것만으로는 사실 이런 시각에 대해 깊은 수준까지 알 수는 없었다. 포장지만 대충 보고 판단을 내릴 뿐, 실제 포장지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확인하는 것까지는 귀찮았다고 하면 될까. 하지만 늘 그렇게 무시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어쩌다 들여다 본 내용물, 생각했던 것처럼 부실하지도 않고 놀라울 정도로 탄탄하고 충실한 내용으로 꽉 차 있음에 일단 놀랐던 것이 그 시작이었던 것 같다.
박스의 내용물을 확인한 후에도 역시 첫 반응은 ‘부정’이었다. 성경속의 수많은 요소들을 해석하는 데 있어 다양한 가능성 중의 하나라는 정도의 인정은 할 수 있었지만 성경속의 크고 작은 오류와 변형, 성경속 사건들에 대한 의문제기에 대해 쉽사리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믿고 있는 믿음은 성경의 완전성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이러한 성경에 대한 완전한 믿음은 꽤나 진지한 것이었다. 그러한 믿음의 진지성을 강조하기 위한 논리로 사용한 것은 바로 성경의 완전성을 조금이라도 부정하게 된다면 이에 근거한 믿음 전체가 무너져 버린다는, 어찌 보면 ‘모 아니면 도’ 식의 비장한 믿음이었다. 겉으론 ‘쳇 별거 없네’ 말하며 쿨한척 부정했지만, 실상은 갖고 있는 믿음 전체가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을 애써 외면하려 했던 첫단계의 반응으로서의 부정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부정’의 단계가 영원할 수는 없었다. 점점 접하게 되는 정보가 많아지고, 깊이를 더해가다 보니 이제는 마냥 부정하고 손사래 치고 끝낼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는 성경은 완전무결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오류도 너무 많고, 왜곡도 많다. 성경이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사건에 대한 정확한 서술을 하고 있다 믿기에는 상호 모순의 지점이 너무 많다는 것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다. 나의 경우에는 알기를 거부하고 일부러 관심을 끄고 있었기에 이제야 알게된 것들이지만, 사실은 이미 몇백년 전에 이에 대한 연구가 끝난 별로 새롭지도 않은 내용들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부정’을 하고 성경은 완전무결하다는 믿음을 유지하는 것은 그 자체가 오히려 알맹이 없는 맹목일 수가 있다. 부정하려고 해보지만 고집과 아집만 늘어갈 뿐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내 믿음의 많은 부분 근간을 이루는 쉐퍼의 철학에 따르면, 내 믿음은 더 이상 지지할 바탕이 없이 무너져 내려야 마땅하다. 성경의 완벽함을 부정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고 한 것 처럼 아무것도 아닌 믿음이 되어버려야 한다.
박스의 내용물을 확인한 후에도 역시 첫 반응은 ‘부정’이었다. 성경속의 수많은 요소들을 해석하는 데 있어 다양한 가능성 중의 하나라는 정도의 인정은 할 수 있었지만 성경속의 크고 작은 오류와 변형, 성경속 사건들에 대한 의문제기에 대해 쉽사리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믿고 있는 믿음은 성경의 완전성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이러한 성경에 대한 완전한 믿음은 꽤나 진지한 것이었다. 그러한 믿음의 진지성을 강조하기 위한 논리로 사용한 것은 바로 성경의 완전성을 조금이라도 부정하게 된다면 이에 근거한 믿음 전체가 무너져 버린다는, 어찌 보면 ‘모 아니면 도’ 식의 비장한 믿음이었다. 겉으론 ‘쳇 별거 없네’ 말하며 쿨한척 부정했지만, 실상은 갖고 있는 믿음 전체가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을 애써 외면하려 했던 첫단계의 반응으로서의 부정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부정’의 단계가 영원할 수는 없었다. 점점 접하게 되는 정보가 많아지고, 깊이를 더해가다 보니 이제는 마냥 부정하고 손사래 치고 끝낼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는 성경은 완전무결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오류도 너무 많고, 왜곡도 많다. 성경이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사건에 대한 정확한 서술을 하고 있다 믿기에는 상호 모순의 지점이 너무 많다는 것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다. 나의 경우에는 알기를 거부하고 일부러 관심을 끄고 있었기에 이제야 알게된 것들이지만, 사실은 이미 몇백년 전에 이에 대한 연구가 끝난 별로 새롭지도 않은 내용들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부정’을 하고 성경은 완전무결하다는 믿음을 유지하는 것은 그 자체가 오히려 알맹이 없는 맹목일 수가 있다. 부정하려고 해보지만 고집과 아집만 늘어갈 뿐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내 믿음의 많은 부분 근간을 이루는 쉐퍼의 철학에 따르면, 내 믿음은 더 이상 지지할 바탕이 없이 무너져 내려야 마땅하다. 성경의 완벽함을 부정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고 한 것 처럼 아무것도 아닌 믿음이 되어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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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완전함을 인정 = 신앙
성경의 완전함을 부정 = 불신앙
??
아니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쉐퍼는 성경의 완전성을 믿음의 필수 요소라 주장했지만 성경의 크고 작은 문제를 인정하고도 여전히 신앙인으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는 말의 무게도 쉐퍼의 주장 만큼이나 무게가 있다. 나름 길었던 여정을 이곳에 자세히 모두 늘어놓을 수는 없지만 성경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불경한 것이 아니다. 명백하게 불완전함이 보이는 텍스트를 완벽하다는 맹목적 믿음을 바탕으로 그 의미를 찾아내려 하는 것보다는, 불완전한 부분이 있는 텍스트라 인정하고 바라보며 그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할 때에 좀 더 정확한 의미 파악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은 지극히 단순하고도 명료한 추론이다. 성경의 완전함을 인정 = 신앙
성경의 완전함을 부정 = 불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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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다시 성경의 말씀을 찾아보고, 다양한 신학자들의 저작들을 훑어보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을 수 있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단순히 책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 순탄하게 유지해 나가기는 힘든 일이다. 처음 복음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만났던 중등부 시절, 성경을 꼼꼼히 읽고 그 안의 내용들을 스스로 확인해보고 다양한 문헌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앙을 키워나갔다. 그냥 주일에 목사님을 통해 설교만 듣는 정도였다면 나름의 탄탄한 믿음을 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책만 꼼꼼히 읽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하나 하나 내 손으로 직접 찾아보고, 다시 검토해보고 하면서 다시 기반을 다지는 일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유치하지만 하나하나 스스로 짚어나가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남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고개 끄덕이다 보니 고개 끄덕였던 기억과 감정은 남아있지만 알맹이는 하나도 남지 않아 멍한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을 발견했다. 내 스스로 찬찬히 곱씹어보는 일을 하지 않으면 소화불량에 차라리 먹지 않고 굶는 것보다 못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시작한 첫 번째가 바로 Ehrman의 책을 바탕으로 해서 성경의 오류라던지, 역사비평적으로 성경을 다시 재구성해서 해석해 가는 일들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며 정리해보기로 했다.
이 과정들을 블로그에 올리는 이유는 몇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첫째로는 내 스스로 앞으로 한참을 걸어가야 할 이 길에서 제대로 의미있는 결과를 얻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컨텐츠에 대해 되새김질을 하며 내것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너무 간단하고 쉬워 몇분만에 별 어려움 없이 이해한 부분도 내 스스로 다시 성경 찾아서 비교하고 정리하고, 책에는 언급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하다 보면 몇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비효율적인 것 같지만 이보다 더 효과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렇게 소화를 완벽하게 시키고 나면 나중에 필요할 때마다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는 그래도 누군가와 생각을 나눌 수 있으면 하는 바램에서이다. 이런 쪽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미 수 차례 들어보고, 이미 이해도 끝낸 기초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이런 부분에 대해 접해보지 못했을 뿐더러, 일단 성경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미 진도가 나보다 몇 년 앞서나가 계신 선배들의 블로그도 있지만, 여기선 또 내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예전에 그러했듯이, 이런 내용에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헛소리에 은혜 전혀 되지 않는 미친 짓인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쓸데 없는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고 정신 차리라, 그럴 시간 있으면 차라리 기도 몇분이라도 더 하라’ 충고하려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다소 그런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명백히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믿음 패러다임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는데도 그냥 있을 순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어쩌면 이러한 것들을 ‘시험든 자’가 괜히 시니컬하게 시비거리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그래도 나름으로는 꽤 진지하고 고민하며 접근하고 있다는 것 만큼은 말하고 싶다. 그래서 더더욱 글이 좀 길어지고 지루해지더라도 혹시라도 얄팍한 지식 하나 얻었다고 껄렁대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려고 한다. 좀 지루한 글이 되는게 짧게 툭툭 던지며 시비 거는 것처럼 보이는 것보다 백배 낫다.
그래서 유치하지만 하나하나 스스로 짚어나가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남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고개 끄덕이다 보니 고개 끄덕였던 기억과 감정은 남아있지만 알맹이는 하나도 남지 않아 멍한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을 발견했다. 내 스스로 찬찬히 곱씹어보는 일을 하지 않으면 소화불량에 차라리 먹지 않고 굶는 것보다 못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시작한 첫 번째가 바로 Ehrman의 책을 바탕으로 해서 성경의 오류라던지, 역사비평적으로 성경을 다시 재구성해서 해석해 가는 일들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며 정리해보기로 했다.
이 과정들을 블로그에 올리는 이유는 몇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첫째로는 내 스스로 앞으로 한참을 걸어가야 할 이 길에서 제대로 의미있는 결과를 얻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컨텐츠에 대해 되새김질을 하며 내것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너무 간단하고 쉬워 몇분만에 별 어려움 없이 이해한 부분도 내 스스로 다시 성경 찾아서 비교하고 정리하고, 책에는 언급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하다 보면 몇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비효율적인 것 같지만 이보다 더 효과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렇게 소화를 완벽하게 시키고 나면 나중에 필요할 때마다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는 그래도 누군가와 생각을 나눌 수 있으면 하는 바램에서이다. 이런 쪽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미 수 차례 들어보고, 이미 이해도 끝낸 기초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이런 부분에 대해 접해보지 못했을 뿐더러, 일단 성경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미 진도가 나보다 몇 년 앞서나가 계신 선배들의 블로그도 있지만, 여기선 또 내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예전에 그러했듯이, 이런 내용에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헛소리에 은혜 전혀 되지 않는 미친 짓인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쓸데 없는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고 정신 차리라, 그럴 시간 있으면 차라리 기도 몇분이라도 더 하라’ 충고하려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다소 그런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명백히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믿음 패러다임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는데도 그냥 있을 순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어쩌면 이러한 것들을 ‘시험든 자’가 괜히 시니컬하게 시비거리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그래도 나름으로는 꽤 진지하고 고민하며 접근하고 있다는 것 만큼은 말하고 싶다. 그래서 더더욱 글이 좀 길어지고 지루해지더라도 혹시라도 얄팍한 지식 하나 얻었다고 껄렁대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려고 한다. 좀 지루한 글이 되는게 짧게 툭툭 던지며 시비 거는 것처럼 보이는 것보다 백배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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