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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joshjackblog.wordpress.com/2010/01/06/the-last-supper-history-and-parody/>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잡히시기 전,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에 대한 기록은 4복음서 모두에 나와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를 19절에 걸쳐 서술하고 있고, 마가복음은 15절, 누가복음은 25절을 할애하여 이 장면을 서술하고 있다. 앞의 세 복음서 모두 소위 최후의 만찬에서의 일을 서술하는 데 한장 미만의 분량만을 할애하고 있다. 물론 세 복음서 모두 공통적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 즉, 예수께서 떡을 떼시고 포도주를 나누시며 십자가에서의 죽음의 의미를 상징에 대한 예수의 설명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앞의 세 복음서가 이 마지막 식사 장면을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는 데 반해, 요한복음은 13장에서 17장까지 5장 전체를 할애하여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는 다른 복음서에서는 없던 다양한 예수의 가르침이 후반의 4장에 걸쳐 서술되고 있는데, 또한 특이한 것은 앞의 세 복음서에서 있었던 떡과 포도주를 나누시는 장면 대신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이 들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요한복음에서 최후의 만찬 장면을 서술하기 위해 사용한 분량은 몇배가 많아졌는데, 오히려 떡과 포도주로 비유되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예수의 말씀 부분은 빠져 있고, 발 씻기심을 통한 서로 섬김과 사랑에 대해 설파하시는 예수의 가르침이 대신 포함되어 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흘리신 죽음으로 인한 죄에서의 구원보다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더 중요시한 것인가?)

과연 예수와 제자들의 마지막 식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4 복음서 모두 공통으로 포함되어 있는 내용은 제자들 중에 예수를 배신할 자가 있다는 예수의 말씀과, 예수께서 베드로의 부인을 예언하신 두가지 사건 뿐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식사에서 있었던 일을 구성하기 위해서 4복음서에 나온 내용을 모두 한 곳에 몰아 넣는 것이 가장 적합한 일일까. 식사를 하시던 도중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우고, 안 씻겠다는 베드로와 실랑이 하시고, 다시 떡과 포도주를 나누시며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하시고, 유다의 배신을 예고하신 후에 다시 이어지는 다양한 비유로 이루어진 말씀이 한참이나 이어지는 장면이 실제 마지막 식사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일까?

잠시 주의를 돌려 요한복음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에 나오는 재미있는 상황 한가지를 살펴보자.

* 13장에서 예수님은 본인이 어딜 가셔야 한다는 말씀을 함께 제자들이 사라진 예수를 찾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신다. 이를 듣던 호기심 많은 베드로가 예수께 묻는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주1)
* 14장으로 이어지는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집에 가서 제자들이 있을 곳을 마련할 것이고, 마련이 다 되면 다시 와서 제자들을 데려가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리고 그 길을 제자들도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신다. 이에 다시 도마가 예수께 묻는다. “주님, 우리는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주2)
* 계속 이어지는 예수의 말씀은 16장까지 이어지고, 다시 예수께서는 당신이 자신을 보내신 분에게로 가신다는 말씀을 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 "너희 가운데서 아무도 나더러 어디 가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다” (주3)

이 상황을 정리하면, 지속적으로 예수께서는 본인이 어디인가로 가신다는 이야기를 하셨고, 제자들은 과연 어디로 가시는 것인지를 예수께 물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까지 하셨다. 그러던 예수님이 다시 또 한번 본인이 어디인가로 가신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는 것에 대해 지적하시고 계신다.

어떻게 된걸까? 예수님이 죽음을 앞두시고 횡설수설 하시는 것일까? 예수께서 어디를 가신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제자들이 질문하길 바라셨는데 앞에 몇번 질문 하더니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슬픔에 찬 제자들을 다그치시는 것일까? 요한복음을 적은 저자의 단순한 실수일까? 혹시 4장 넘게 이어지는 예수의 마지막 식사에서의 가르침이 사실은 마지막 식사의 때에서 모두 이뤄진 것이 아닌 마지막 식사 이전에 하셨던 다수의 가르침을 한 곳에 모아 놓다 보니 생긴 실수인가?

누군가는 이를 놓고 ‘성경에 절대 오류가 있을 수 없다’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설명을 덧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이래서 성경은 믿을게 못된다’라며 또 다른 오류들을 증거로 들이밀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또한 앞의 양 극단이 아닌 어느 위치에선가 나름의 추론을 바탕으로 설명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아마 요한복음에 4장에 걸친 예수의 가르침이 실제로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 이후에 이뤄진 것이라기 보다는 그 이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가르침 중에서 요한복음의 저자가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라 생각된 것들을 예수의 죽음 이전에 배치하여 그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게 하다보니 앞의 예와 같은 작은 실수가 남겨져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의 경우 예수께서 베드로의 부인을 예고하시는 장면을 거의 마지막 사건으로 기록하고 바로 예수의 동산에서의 기도 장면으로 옮겨간다. 요한복음에서도 13장의 마지막은 예수께서 베드로의 부인을 예고하시는 것으로 끝내고 있지만 이후 14장에서 17장 까지의 가르침이 더해지고 있다. 이를 볼 때 요한복음 14장에서 17장까지의 예수의 말씀은 실제 마지막 만찬에서 있었던 가르침이라기보다는 그 이전의 가르침을 이 위치에 저자가 서술해 놓았다고 보는 것이 그리 억지스럽지는 않아 보인다.

여기서 정말 의미있고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추론의 과정이라 생각이 든다. 나름의 설명을 찾아내기 위한 추론의 과정, 그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정말 많다. 요한복음에만 나와 있는 많은 분량의 가르침이 실제로는 마지막 식사에서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그 이전의 가르침을 모아 놓은 것이라는 추론을 하기 위해서는 과연 그러한 추론이 얼마나 합당한 추론인지에 대한 다양한 검증이 필요할 것이다. 그냥 느낌상 그럴 것 같다 생각하는 것을 넘어 성경 이곳 저곳을 뒤져가며 좀더 이를 합당한 추론으로 여기게 할 만한 것들을 찾아내는 과정이 정말 중요하다.

또한 그런 추론 이후에도, 왜 요한복음의 저자는 그러한 예수의 가르침을 그 위치에 두고 서술했는지에 대한 이유에 대해 탐구하는 것 또한 또 하나의 큰 일이 될 것이다. 왜 위와 같은 오류가 발생한 것인지, 왜 요한복음의 저자는 다른 복음서와 다른 이야기를 그 자리에 두었는지, 예수의 죽음의 의미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의식이라 생각되는 빵과 포도주 나눔의 장면을 왜 요한복음의 저자는 서술하지 않았는지 등등… 이에 대해 탐구하는 것은 ‘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을까? 이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시려 한 것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한 것 만큼 또한 중요하다. 서술된 사건을 단순히 주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해당 사건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 이상으로 왜 해당 사건은 이러이러하게 서술되었는지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 또한 정말 중요하다.

성경을 배우기 위해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는 절대 부족하다. 자신이 직접 성경을 읽으며 그 안에 담겨진 의미와 가르침을 찾고자 하는 씨름을 할 때 그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고,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

역사비평적 성경 탐구 또한 그냥 이에 관한 책을 읽으며 고개 끄덕이는 것만으로는 절대 부족한 것 같다. 고개 끄덕이며 다 이해한 것 같지만 막상 누군가에게 내가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얘기할라 치면 한문장도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로 말하지 못하고 횡설수설만 할 뿐이다. 이미 많이 들었고, 어떤 경우는 책을 읽어가면서 무슨 내용을 말할 것인지를 이미 알 것 같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시 말하려 하면 막히기 일쑤다. 결국 이것도 그냥 책을 술술 읽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내가 직접 찾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게 이 긴 글을 통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이미 책에 정리 잘 되어 있고, 성경에 대해 어느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상당수 익숙한 내용을 굳이 내가 여기에 시간들여 정리하는 이유는 바로 내 자신 스스로 정리를 하고 싶어서일 뿐이다. 몇 분이면 쉬이 읽어갈 내용을 귀찮더라도 이렇게 시간내어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를 해 나가야 언젠가 부터는 이 곳에 내 스스로 살을 조금씩 붙여갈 능력도 길러질 것이다.

이게 바로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글을 내가 계속 올리는 이유다.


(주1) 요13:36 - 시몬 베드로가 예수께 물었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나중에는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
(주2) 요14:5 - 도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는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주3) 요16:5~6 - 그러나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로 간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서 아무도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고, 도리어 내가 한 말 때문에 너희 마음에는 슬픔이 가득 찼다.

* 이 글은 Erhman의 ‘Jesus, Interrupted’를 다시 읽으며 그 안에서 다뤄진 내용을 나름의 생각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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