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거나 조롱하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좋은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리고 그런 손가락질이 언젠가는 나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아가다 보니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그럼에도 가끔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을 때가 있는데, 보통은 내가 절대적인 우위에 있다는 생각으로 말미암을 때가 있다. 내가 손가락질 하는 상대는 절대로 나와 같을 수 없고, 손가락질 하는 대상은 절대로 나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라 생각이 들 때에 그나마 맘이라도 약간 편하게 먹고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인지라 약간의 악의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내가 지금 말하는 손가락질은 악의에서 비롯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저급하기 짝이 없는, 그러니까 손가락질 당하고, 조롱 당해 마땅한 것들에 대한 손가락질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도덕적이라던지 다른 어떤 기준에 의해 우위에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조롱을 일삼은 것은 좋지만은 않을터.

암튼 그렇게 '손가락질 받을 만한' 것에 대한 조롱이라 생각하며 맘껏 비웃다가,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은 것과 똑같은 것을 자신에게 발견하게 될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이 바로 수치심이다, 부끄러움이다, 자괴감이다.

내가 믿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절대 진리라는 것을 굳게 믿었던 나는, 다른 종교의 비 이성적 행위라던지, 소위 이단이라 불리는 집단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들을 버젓히 하면서도 창피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며 맘껏 손가락질을 하고 비웃었었다. 손가락질 받아 마땅하고 또한 손가락질을 하고 조롱을 해서라도 창피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옳다라고 생각해 왔다. 그와 동시에, 정상적인 사고의 틀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오늘 나는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 내가 그동안 손가락질 하며 비웃고 조롱하던 것,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짓, 미친 사람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 소위 손 발이 오그라들어 차마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했던 일들을 한동안 내가 정말 열심히 섬기던 교회가 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멀리 떨어져 무슨 일이 있는 지도 모르고, 돌아가는 사정을 일일이 파악할 만큼 시간적 여유도 없지만, 선을 넘어도 한참 넘어버린 모습에 할말을 잃는다.

저런 저질스러운 말들을 '주님께'라는 말과 함께 섞어 쓰면 으레 거룩하게 보일 것이라 믿는 것인가. 당당하게 올려져 있는 저 글들에 정말 가슴이 다 무너져 내린다. 내가 믿는 진리가 절대 진리라 굳게 믿고 당당하게 손가락질을 했던 모든 손가락질과 조롱의 대상, 그 보다 더한 것들을 여기서 떳떳하게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수치가, 이보다 더한 치욕이 어디 있을까. 그 어떤 세속적인 모금 운동에서도 이 정도로 저급한 식의 권유는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세속의 영역에서는 차마 부끄러워 대놓고 하지 못할 말들을 이 곳에서는 종교의 권위를 빌어,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포장해놓고 떳떳하게 치부를 드러내고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있다.

미쳤구나. 미쳤구나. 대운하를 그리스도의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지지하던 때는 그나마 나았던 것이었다. 그때는 적어도 정치적 색채를 띈 것 분일 것이다 라고 위안이라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정치적 이슈도 아닌 내부에서 이렇게 썩어가고 있다. 이제는 대놓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럽고 추악하다고 했던 것들을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름으로 거룩하다 포장하며 팔아대고 있다. 무식함에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무식한 자의 야망이 모두를 구렁텅이로 이끌어 가고 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일어나 '우리는 저보다는 낫다'라며 항변해도 할말이 없을 정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http://sgmc.sarang.org/construction/construction_07.asp >


덧붙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몇마디 덧붙인다. 장소가 협소해서 건축을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 개교회가 하는 일인데 무슨 상관이냐. 교회는 건축하면 안되냐 하는 일차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을 듯 싶다. 이 글에서 내가 문제 삼는 것은 건축 여부가 아니다. 건축을 위해 사용한 저 수치스러운 말들의 향연을 보라는 것이다.

믿음으로 건축하는 거 상관 안한다. 근데 저건 아무리 봐도 믿음 팔아서 건축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뉴스앤조이에 실린 오정현 목사의 설교 내용이라던지, 특별 영상을 통해 말한 옥한흠 원로 목사의 발언 전체에서 건축 시작으로 인한 부담과, 나름대로의 이유들을 늘어놓지만, 그 중 어느 것도 '그렇게 생각하면 건축이 필요하긴 하지...'라는, 적어도 한번 정도는 쉬어가며 다시 생각해볼만한 제대로 된 건축의 이유는 없었다. 말은 여러가지 이유라며, 반박이라며 내놓는 말들이긴 하지만 단방향으로 이루어진 설교요 영상에서 나온 반박일 뿐이다. 누구랑 맞대어 이야기 하면서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이끌어갈만한 나름의 이해할만한 이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가 위에 캡춰한 내용처럼 저급한 헌금 권유, 아니 강요를 정당화 할 수 있는가? 나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 불러다 놓고 건강식품이네 뭐네 하면서 파는 작자들이 하는 말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사기 판매도 저거보단 좀 세련됐겠다.

아무리 급해도, 그래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거룩한 믿음의 발로에 의한 것이라면, 좀 고상하게 해보자. 저따위 동네 창피한 말 하지 않아도 이뤄질 수 있는게 하나님의 일하심 아닌가? 저건 하나님이 절대 일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해도 너무 확신하고 있는 자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나름대로 고안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저급한 말들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고 믿는 자들이라면 저런식으로는 절대 할 수 없다. 아니면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신들의 뜻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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