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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금서로 지정되기 한참전부터 집 서재에 꽃혀있던 책인데, 이제서야 읽었다. 일반인들을 위한 소위 '알기쉬운 경제학'류의 책을 몇권 읽어봤더니 재미는 있다만, 별다른 깊이가 없더라는 축적된 경험이 쉽사리 이 책을 읽는 것을 망설이게 했다. 그러한 경제학 입문서 책이 선전에 비해 형편없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경제학'이라는 학문, 아니 경제라는 현상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간식 먹으며 소파에 편히 앉아 책 몇권 읽어서 이해될 만한 차원의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류의 입문서는 이미 충분히 읽어봤는데, 굳이 또 읽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그래도 국방부의 금서로 지정되었다고 하니 뭔가 센세이셔널한 내용이 들어있을 거라 기대했다. 이 책의 저자인 장하준이 케임브리지대 교수라 하고, 유명한 경제학 분야의 상도 많이 수상했다고 하니 내용 자체가 파격적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정작 궁금한 것은, 이 책의 어떤 특정 부분이 우리나라 경제 상황, 혹은 대한민국의 어떤 정부 정책에 대해 일침을 가했길래 금서의 반열에까지 오를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누구 말대로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한 국방부의 해당 관계자는 분명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십중팔구 이 책의 제목만을 근거로 하여 '금지도서'라는 딱지를 붙였을 것이다. 차라리 읽지 않고 제목만 보고 금서 딱지를 붙였다고 하면 게으름, 무성의함에 대한 비난을 받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설마 이 책을 읽어보고 금서라는 딱지를 붙일 결정을 했다면 국방부의 해당 관계자는 무지함에 대한 조롱을 받아 마땅하다. 최소한 이 책의 제목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아닌 '전형적인 사마리아인들'과 같은 다소 유한 표현을 사용한 타이틀을 달고 출판되었더라면 금서목록에 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나의 추측이다. 아마 이를 금서로 정한 국방부 관계자는 길거리의 '김밥천국' 간판을 보고는, 급속도로 확장해가는 신흥종교의 예배당이라 생각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기독교의 가나안땅처럼, 김밥천국교의 천국에는 어디에나 김밥이 널려 있을진저.

본론으로 돌아와 책에서 다루는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적어도 이 책은 '알기쉬운 경제학'류의 책들이 대부분 다루고 있는 영역의 수준을 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처럼 경제학을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되어있지만 내용 자체는 적어도 내 수준에서는 새롭고, 흥미롭다. 금서의 목록에 올랐으니 당연히 좌파적인 시각에서 쓰여진 경제학 도서라 여겼던 나에게 몇몇 부분은 너무도 우파스러워서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좌 또는 우의 정치적 논리와는 큰 연결고리 없이 경제학적인 입장에서 현상을 파악하고자 노력했다는 흔적이 보인다. 며칠전 장하준 교수가 한나라당의 어떤 모임에서 강연을 했다는 기사의 제목만 읽고 의아해했는데, 책을 읽고보니 별 일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책의 내용을 가지고 하는 강연이라면 한나라당에 가서 강연을 하던 민주당에 가서 강연을 하던 박수 받을 일은 있어도 서로간에 얼굴 붉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특히, 정부 고위 관료나 권력자의 부정부패가 경제발전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다루는 부분은 이 책이 어떤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지지하기 위하여 씌여지지 않고 지극히 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저자는 권력자의 부정부패가 경제발전에 도움되는 경우에 대한 예를 들기도 하고, 부정부패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은 예도 들며 경제발전과 부정부패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만큼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논거를 펼친다. 몇개의 문장으로 짧게 요약될 수 없겠지만, 저자에 따르면 부정부패를 척결함으로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논리도, 경제 발전을 위해 어느정도의 권력자의 부패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논리도 경제학적이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경제적 상황에 따라 부정부패가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뿐이다. 권력자의 부정부패가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이 책에서 다루는 범위 밖의 일이다. 이책은 단지 어떤 현상이 과연 경제발전과 연관성이 있는지 없는지만을 따져볼 뿐이다.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의 연결고리도 저자는 비슷한 방식으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국방부 금서목록에 올랐다는 이유로 기대했었던 그 기대만큼은 재미가 없었고, 경제학 따라잡기류의 심심풀이로 읽을만한 책일것이라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유익했고, 신선했고, 심오했다.

p.s. 대한민국 군인들은 남양유업에 감사해야 한다. 남양유업이 '17차'를 만들며 한가지 차 성분을 더하여 '18차'라 이름을 지었다면, 전지현이 나오는 광고는 물론, 해당 음료가 불온음료로 선정되어 피엑스에서 구경도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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