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특강이 있었다. 외부 강사를 초청해 영어 e-mail 쓰는 법에 대해 1시간 30분동안 진행된 특강이다. 1시간정도 듣다보니 소개된 바와는 달리 '영어 e-mail 쓰는 법'에 대한 강의가 아니라 'e-mail 쓰는 법'에 대해 영어로 말하는 강의였다. '결론을 제일 앞에 두라' , '최대한 간결하게 내용을 적어라' , '수신인 지정을 명확히 해라' 등등 이미 다 아는 이야기들. 강사의 말빨이 좋아서 꽤나 웃으며 재미있게 들은 특강이지만 남는 건 거의 없는 강의였다.
만약 똑같은 내용을 우리말로 설명하는 특강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얼굴 찌뿌리며 다들 한 소리들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오늘 강의? 별 내용 없음에도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강사가 영어로 강의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들 끝까지 자리를 비우지 않고 웃어가며 고개 끄덕이며 잘 들었다. 나도 뭐 약간 시간이 아깝기는 하지만 영어 리스닝 공부한 셈 치면 그다지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의미부여하고 만족했던 걸까? 발음 좋은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 웃으면서 들었으니 그 자체로 유익하다고.
익숙치 않은 언어를 접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아니면 오직 영어이기에 그런 것일까? 만일 내가 한 소수민족의 언어, 일상 생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진 못해도 듣고 이해하는 정도 된다고 할 때, 그 언어로 뭔가를 읽거나 들었을때, 내용의 충실 유무를 따지지 않고 그 언어를 접하는 기회라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의미부여를 할 수 있을까?
기억해보면, 비슷한 수준의 감명을 준 책이라 하더라도 국문으로 된 책보다는 영어로 되어있는 책을 읽은 것이 더 기억에 남고, 뭔가 뿌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같다. 'Tuesday with Morry'같은, 나와는 거의 상극에 가까운 책을 읽은지도 벌써 수년이 지났음에도 내 기억속에 뚜렷이 남아있는 오직 한 이유는 아마도 그 책을 영어로 읽었다는 사실 때문인 듯 싶다.
가지지 못한 자의 항변은 종종 가진자에 대한 이유없는 질투처럼 느껴지곤 하듯이, 영어 못하는 나의 이런 의문들은 영어 잘하지 못함에 대한 컴플렉스처럼 비춰질듯 싶다.
어찌됐든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건 참 부러운 일이다. 굉장한 프리미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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