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목표

2009/03/27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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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전, 기계공학에서 전자공학으로 전공을 약간 비틀어 대학원을 준비한답시고 대학생활을 1년 더 했던 기간은 사실상 널널하기 그지 없는 시간이었고, 영양가도 없는 시간이었다. 그나마 그 시간들을 의미있게 여길 만한 기억은 그 시간에 '프란시스 쉐퍼'의 전집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이다. 철학이나 이런 쪽으로는 머리에 든 것이 없는 공돌이에게 있어서 쉐퍼의 이 책들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었다. 따뜻한 감성이 아닌, 차가운 이성의 머리 회전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는 사실, 성경은 영적인 부분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전 영역에 있어 참된 진리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얼마나 즐거웠었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좀 과장된 표현을 사용한다면, 이미 오래전부터 구원의 확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쉐퍼의 전집을 읽으면서 내가 복음의 진리로 다시 태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지 몇년 후 기독교 원서를 전문으로 파는 서점에서 쉐퍼 전집 영문판을 발견하고는 잽싸게 구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바쁜 회사 생활때문이었는지 3권째를 읽다가 멈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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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시절에 한권짜리 '김교신 평전'을 읽고 또 한번 눈이 트이는 경험을 했다. 김교신의 고백과 그의 삶은, 성경을 진정한 참 진리라 믿고, 그 진리대로 살아가는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성경을 진리라 믿고, 그 진리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실제의 삶에서도 가능하고, 실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일제의 그 어둠의 시절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된 것만으로도 기쁘고 눈물나는 반가움이었다. 나름대로 예수 잘 믿고 그분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있던 내 자신을 너무도 창피하고 부끄럽게 만들었던 그의 삶이었다.

당장이라도 김교신 전집을 구해서 읽고 싶었지만 이미 오래전에 출판된 것이라 구하기도 어려웠다. 고생끝에 판매처를 알아내어 찾아가보니, 조사를 제외한 대부분이 한자로 되어있고, 게다가 세로쓰기 판본으로 내가 도저히 읽을 수 없는 형태의 것임에 적잖히 실망했었다. 특히 일제시대 당시의 문구 그대로, 별다른 설명이나 의역이 없는 문장은 사실 한글로만 적혀 있어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난해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01년 봄 즈음에 김교신 전집이 새롭게 출판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YMCA에서 출판 기념회도 있다는 소식에 나는 그곳까지 부랴부랴 달려갔고, 아직 서점에 정식 출판하기 며칠전 따끈따끈한 그의 전집을 현장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 그날 집에 오던 길이 어찌나 가볍기 그지 없던지... 하지만 이번에도 대학원 졸업후 바쁜 회사생활을 핑계로 1권을 밍그적 밍그적 읽다가는 그냥 덮어버렸다. 그리고 세월이 훌쩍 흘러 2009년이 되어 버렸다.

4월부터 약간 여유있는,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유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나의 시간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시간을 서너달 갖게 될 것 같다. 이 기간에 무슨 책을 읽으면 좀 뿌듯할까 생각하면서 머리에 처음 떠오른 것은, 그간 업데이트 하지 못하고 남겨두었던 하루키의 소설 몇권과, 폴 오스터의 소설 중 읽지 않은 것들, 그리고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들이었다. 그래도 뭔가 허전하다 생각했는데, 책장 구석에 잘 모셔놓은 김교신 전집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렇게 날듯이 기뻐하며 샀던 김교신 전집을 수년동안 읽지 않고 왜 그냥 보관만 하고 있었는지 지금에 와서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 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그래서 이번 기간동안 김교신 전집을 끝내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삼았다. 다른 일들도 많이 하는 기간이겠지만 김교신 전집을 이 기간 동안 끝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억에 남을만한 기간이 될 것 같다. 아마도 앞으로 걸어갈 새로운 길 속에서 믿음을 잃지 않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하나님 손 꼭 붙잡고 걸어갈 힘의 원천을 그의 전집속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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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더 있다. 늦달님의 블로그에 놀러갔다가 함석헌 전집 출판 소식을 들었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또한 한때 나의 눈이 번쩍 뜨이게 하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게 만들었던 책이다. 그러니 그의 전집이 30권으로 이루어져 이번에 출판되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반가운 지 모르겠다.

물론 함석헌 전집은 금년에는 감히 손을 대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몇년 후 다시 또 짧게나마 여유를 부려 볼 시간이 온다면 그 때에는 함석헌 전집에 도전을 해볼 것이다.

거의 1년여동안 잡지책이나 뒤적거리며 책다운 책 한권 읽지 못하고 보냈는데, 정말 오래간만에 책에 대한 욕구가 불끈 불끈 솟아나고 있다. 앞으로 영영 책다운 책 읽지도 않고 삶에 치여 사는 멍청이로 전락할 줄 알았는데,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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