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현 목사님께.
작년 말이었지요. 옥한흠 목사님께서 설교시간에 이명박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듯한 말씀을 설교 도중에 하셨습니다. 그 설교를 듣고 저는 당분간 사랑의교회에는 더이상 헌금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불우아동 후원을 하는 몇몇 단체에 사랑의교회에 내던 헌금의 일부를 후원하게 되었구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사님께서 국민일보 칼럼에 낸 '대운하'관련 칼럼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글을 읽고는 지난번 옥목사님 설교를 듣고 제가 결심했던 것들, 즉 사랑의교회에는 당분간 헌금을 내지 않겠다는 것과, 사랑의교회 대예배는 더이상 참석하지 않겠다는 저의 결심이 그릇되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훈련받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사랑의교회에서 주욱 훈련받아 왔기 때문일까요? 아무리 제가 사랑의교회를 비판한다 하더라도 결국 사랑의교회에서 자라온 성도임을 부정하기는 힘들었나봅니다. 대예배는 참석하지 않아도 사랑의교회 영어예배에 계속 참석하게 되더군요. 시간이 좀 더 흐르니 과연 내가 예배드리는 이곳에 헌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 옳은일인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더군요. 그래서 간간히 헌금도 드리고, 지역 다락방에 새롭게 속해서 목사님께서 만드신 다락방 교재로 성경공부도 하게 되더군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 제 본 모습인것 같았습니다. 지역 다락방에서 목사님께서 만드신 교재로 성경공부하면서도 종종 불편한 내용들이 다뤄지곤 했지만, 왠만하면 사사건건 트집잡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좋은 점만 골라서 받아들이자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제가 이번 한달, 회사일이 무척 바쁘게 되었습니다. 결국 어제는 주일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나갈 수 밖에 없었고, 그래도 짬을 내서 회사에서 인터넷으로라도 예배를 드리고자 했습니다. 영어예배는 인터넷 생중계가 되지 않아 할 수 없이 대예배 인터넷 생중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성령님에 대한 내용으로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시더군요. '2,3,4부 예배에서 내가 몇마디 했더니 그새 이메일이 몇통 왔습니다. (약간이 한숨~) 5부 예배에서는 말 안할랍니다'라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그렇게 설교가 계속되더니 결국 '그래도 이 한마디는 해야겠습니다'라며 말씀을 하셨습니다. '광우병으로 죽은 사람이 아직까지 한사람도 없는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나라 전체가 들썩이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하셨지요. '특히, 어린 학생들까지 촛불집회다 뭐다 하면서 저러는건, 정말 아니다'고 말씀하셨지요.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는 설교단에 설 수 없으며, 이런 생각이 내 생각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감동 주신 것이고, 성령님께서 감동주신 것을 말하는 것뿐이다'라고 말씀도 하셨구요. 16살때부터 설교를 하셨다는 예를 들면서 설교라면 대가의 수준이 아니겠느냐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말씀도 하시더군요.
뭐, 지난 몇주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로, 광우병으로 나라 전체가 시끌시끌할 때부터 사실 저는 이에 대해 오목사님께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목사님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지난 '대운하 칼럼'이후로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니 다시 사랑의교회에 헌금을 내지 않는 것과, 대예배 참석을 하지 않겠다는 제 결심이 너무 극단적인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는데, 그 싹을 다시 자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광우병으로 지금까지 죽은 사람이 한명도 없는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가능성때문에 두려움과 공포에 떠는 모습이 말이 되냐고 말씀하셨지요. 전국적으로 들끓고 있는 국민들의 감정에 대해 오버하는 것이라며 말씀하셨지요. 어제 설교만이 아니셨더군요. 지난 11일 국민일보에 또 칼럼을 쓰셨더군요. <진리의 영이신 성령으로>라는 제목으로 이러한 현상을 위치감각을 상실한 외눈박이에 비교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실체없는 광우병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두려움과 공포의 패닉상태에 빠져있는 이 현실이 희한하다고 쓰신것도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별거 아니니 야단법석 떨지 말아라'라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은데요. 작금의 국민들이 정부의 정책에 대해 반기를 드는 것을 회심전의 바울이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던 주모자였을 때의 얼굴과 같다고 예를 들기도 하셨더군요.
목사님께 한가지 여쭙겠습니다. 성경에서 '평안하다, 평안하다, 별거 아니다, 별거 아니다' 라고 말하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거짓 선지자들의 몫이 아니었던가요. 제가 너무 적절치 못한 예를 든것일 수도 있겠네요. 적들이 진군해 올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 떨고 있을때 '두려워 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라고 격려하던 장면들도 많이 찾아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럼 한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지난 노무현정권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를 하려고 하던 때 '국가보안법 폐지하자는 것은 우리나라를 공산화하겠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절대 폐지되어서는 안된다. 이번 XX요일 00시에 시청앞 광장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반대 집회가 있으니 참석하라'고 말씀하셨던 것 기억하시죠. 사학법 개정이 이루어질때도 '사학법 개정이 이루어지면 기독교가 세워놓은 우리나라 교육의 기반이 다 무너질 것이고, 결국 우리나라의 기독교 근본의 뿌리가 흔들릴 것이므로 절대 개정되어서는 안된다'라고 말씀하셨던 것도 기억하시죠. 그때는 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가능성 때문에 두려움과 공포의 패닉상태에 빠지셨던 것인지요. 광우병처럼 사람 죽고사는 문제도 아니고, 사실 일부 보수세력 외에는 많은 사람들이 찬성하던 그 법안들에 대해서는 엄청난 큰 일이 일어나는 것 처럼 두려워 하셨는지요. 이러저러한 경우에는 '별거 아니니 두려움에 떨 것 없다'라고 하시고, 또 다른 경우에는 '정말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다'라고 하시며 사안에 따라 다른 말씀을 하시는 것은 성령님의 음성에 의한 것인지요 아니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빙자한 오목사님 당신의 정치적 사견이신지요.
또한, 궁금합니다. 지난 몇주간의 전국적인 떠들석함의 원인이 목사님 말씀대로 단순히 실체도 없는 광우병에 대한 두려워 하며 떠는 패닉상태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실체가 없는 광우병이라는 근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네,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기저에는 현 정권에 대한 '불신'과 '분노'에 의한 것임을 부정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목사님도 알다시피 이달말 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국회의 과반수 이상을 한나라당에서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여론이 반영될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다수의 국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정당한 의견표시행위를 '두려움에 패닉상태에 빠진 균형감각을 상실한 자들'의 행동이라 치부하는 것은 너무 오버이십니다. 아니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인간의 미각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대량생산해내는 소고기 생산 방식과, 이 모든 것을 오직 경제적 논리만으로 다른 고려사항을 무시하며 이루어지는 작금의 소고기 협상들이 목사님 눈에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은혜롭게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시고 계시는 것인지요. 목사님께서 직접 언급하시지는 않았지만 이런식의 논리라면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도 성령의 충만함으로 설명되어야 하는 것인지요. 도대체 예수님 승천 후 마가의 다락방에 내려온 성령님의 역사가 어찌 이런 경우에 대한 지지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는지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촛불집회가 이루어지고, 국민들이 광장에 모여 자신의 의견을 표하고자 하는 행동을 해서 망해버린 나라가 하나라도 있습니까? 목사님 말씀처럼 왜 실체도 없는 '국론분열', '국가붕괴'등의 쓸데없는 걱정으로 패닉상태에 빠지셔서 바라보고 계신지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목사님과 정치적 의견이 다른 사람이 목소리 높인다고 해서 너무 패닉상태에 빠지지 마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냥 느긋하게 계셔도 큰 일 일어나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이 목사님 말씀하신 대로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으실 때인 것 같습니다. 만의 하나 제가 광우병이 걸리게 되었다면 이라고 생각해봤습니다. 처음엔 물론 두렵고 떨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안에 계신 성령님으로 인해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엔 두렵고 떨리지만 결국 이겨낼 수 있는 평정심. 그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갖고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저는 걸리지도 않고, 실체도 없는 광우병의 공포로 두려워 떠는 것이 아닙니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현 정부에 대해 분노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광우병으로 죽은 사람 한명도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고, 대운하를 건설하게 되면 경기가 부양되고 경제가 살아난다'라고 목사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무식한 사람도 목회자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가 무식하다고 저는 깔보지 않습니다. 다만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실체없는 광우병을 근거로 들어대며 반대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성령 충만하지 않은 자의 모습이다'라든지 '대운하의 물길을 통해 정신이 통할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인간과 인간을 소통하게 하신 예수님의 모습'이다라는 거짓말만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시간 나실때 이런저런 자료들을 통해 지식을 쌓으시는 것도 강력 추천드립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다보면 목사님 스스로 당신의 무식함으로 인해 자존감이 무척 낮은 자의 모습을 종종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바울이 회심하고 주의 큰 종이 된 것에는 바울 스스로는 부정하기도 했지만 '세상 초등학문'에 의한 지식이 한 몫 했을 것 같습니다. 목사님도 '세상 초등학문'에 약간이라도 더 관심을 가지신다면 설령 정치적 신념이 바뀌지 않는다 하더라도 좀더 세련된 말씀이라도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오늘 저는 집에 들어오면서 문 앞에 붙어 있던 '사랑의교회' 교패를 떼어내어 휴지통에 버렸습니다. 그 바로 전에는 제 가방과 핸드폰에 달려있던 사랑의교회 핸드폰 고리를 떼어내어 휴지통에 버렸습니다. 그리고 회사일로 바빠 깊게 생각할 시간도 갖지 못한채 그저 생각나는 대로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사랑의교회'를 떠난다는 것에 대해 그간 두려워하고 떨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평정심을 찾을 때인 것 같습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성경의 가르침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을 성경의 권위를 갖고 설교시간에 늘어놓는 것을 더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오목사님께서 사랑의교회 담임목사 자리에서 내려오시거나, 혹은 오목사님이 정말 성령의 충만함으로 크게 변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저는 사랑의교회 교인이길 거부하겠습니다. 그럼 성령님 안에서 평안하십시오.
작년 말이었지요. 옥한흠 목사님께서 설교시간에 이명박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듯한 말씀을 설교 도중에 하셨습니다. 그 설교를 듣고 저는 당분간 사랑의교회에는 더이상 헌금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불우아동 후원을 하는 몇몇 단체에 사랑의교회에 내던 헌금의 일부를 후원하게 되었구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사님께서 국민일보 칼럼에 낸 '대운하'관련 칼럼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글을 읽고는 지난번 옥목사님 설교를 듣고 제가 결심했던 것들, 즉 사랑의교회에는 당분간 헌금을 내지 않겠다는 것과, 사랑의교회 대예배는 더이상 참석하지 않겠다는 저의 결심이 그릇되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훈련받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사랑의교회에서 주욱 훈련받아 왔기 때문일까요? 아무리 제가 사랑의교회를 비판한다 하더라도 결국 사랑의교회에서 자라온 성도임을 부정하기는 힘들었나봅니다. 대예배는 참석하지 않아도 사랑의교회 영어예배에 계속 참석하게 되더군요. 시간이 좀 더 흐르니 과연 내가 예배드리는 이곳에 헌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 옳은일인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더군요. 그래서 간간히 헌금도 드리고, 지역 다락방에 새롭게 속해서 목사님께서 만드신 다락방 교재로 성경공부도 하게 되더군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 제 본 모습인것 같았습니다. 지역 다락방에서 목사님께서 만드신 교재로 성경공부하면서도 종종 불편한 내용들이 다뤄지곤 했지만, 왠만하면 사사건건 트집잡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좋은 점만 골라서 받아들이자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제가 이번 한달, 회사일이 무척 바쁘게 되었습니다. 결국 어제는 주일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나갈 수 밖에 없었고, 그래도 짬을 내서 회사에서 인터넷으로라도 예배를 드리고자 했습니다. 영어예배는 인터넷 생중계가 되지 않아 할 수 없이 대예배 인터넷 생중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성령님에 대한 내용으로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시더군요. '2,3,4부 예배에서 내가 몇마디 했더니 그새 이메일이 몇통 왔습니다. (약간이 한숨~) 5부 예배에서는 말 안할랍니다'라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그렇게 설교가 계속되더니 결국 '그래도 이 한마디는 해야겠습니다'라며 말씀을 하셨습니다. '광우병으로 죽은 사람이 아직까지 한사람도 없는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나라 전체가 들썩이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하셨지요. '특히, 어린 학생들까지 촛불집회다 뭐다 하면서 저러는건, 정말 아니다'고 말씀하셨지요.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는 설교단에 설 수 없으며, 이런 생각이 내 생각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감동 주신 것이고, 성령님께서 감동주신 것을 말하는 것뿐이다'라고 말씀도 하셨구요. 16살때부터 설교를 하셨다는 예를 들면서 설교라면 대가의 수준이 아니겠느냐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말씀도 하시더군요.
뭐, 지난 몇주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로, 광우병으로 나라 전체가 시끌시끌할 때부터 사실 저는 이에 대해 오목사님께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목사님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지난 '대운하 칼럼'이후로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니 다시 사랑의교회에 헌금을 내지 않는 것과, 대예배 참석을 하지 않겠다는 제 결심이 너무 극단적인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는데, 그 싹을 다시 자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광우병으로 지금까지 죽은 사람이 한명도 없는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가능성때문에 두려움과 공포에 떠는 모습이 말이 되냐고 말씀하셨지요. 전국적으로 들끓고 있는 국민들의 감정에 대해 오버하는 것이라며 말씀하셨지요. 어제 설교만이 아니셨더군요. 지난 11일 국민일보에 또 칼럼을 쓰셨더군요. <진리의 영이신 성령으로>라는 제목으로 이러한 현상을 위치감각을 상실한 외눈박이에 비교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실체없는 광우병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두려움과 공포의 패닉상태에 빠져있는 이 현실이 희한하다고 쓰신것도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별거 아니니 야단법석 떨지 말아라'라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은데요. 작금의 국민들이 정부의 정책에 대해 반기를 드는 것을 회심전의 바울이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던 주모자였을 때의 얼굴과 같다고 예를 들기도 하셨더군요.
목사님께 한가지 여쭙겠습니다. 성경에서 '평안하다, 평안하다, 별거 아니다, 별거 아니다' 라고 말하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거짓 선지자들의 몫이 아니었던가요. 제가 너무 적절치 못한 예를 든것일 수도 있겠네요. 적들이 진군해 올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 떨고 있을때 '두려워 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라고 격려하던 장면들도 많이 찾아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럼 한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지난 노무현정권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를 하려고 하던 때 '국가보안법 폐지하자는 것은 우리나라를 공산화하겠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절대 폐지되어서는 안된다. 이번 XX요일 00시에 시청앞 광장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반대 집회가 있으니 참석하라'고 말씀하셨던 것 기억하시죠. 사학법 개정이 이루어질때도 '사학법 개정이 이루어지면 기독교가 세워놓은 우리나라 교육의 기반이 다 무너질 것이고, 결국 우리나라의 기독교 근본의 뿌리가 흔들릴 것이므로 절대 개정되어서는 안된다'라고 말씀하셨던 것도 기억하시죠. 그때는 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가능성 때문에 두려움과 공포의 패닉상태에 빠지셨던 것인지요. 광우병처럼 사람 죽고사는 문제도 아니고, 사실 일부 보수세력 외에는 많은 사람들이 찬성하던 그 법안들에 대해서는 엄청난 큰 일이 일어나는 것 처럼 두려워 하셨는지요. 이러저러한 경우에는 '별거 아니니 두려움에 떨 것 없다'라고 하시고, 또 다른 경우에는 '정말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다'라고 하시며 사안에 따라 다른 말씀을 하시는 것은 성령님의 음성에 의한 것인지요 아니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빙자한 오목사님 당신의 정치적 사견이신지요.
또한, 궁금합니다. 지난 몇주간의 전국적인 떠들석함의 원인이 목사님 말씀대로 단순히 실체도 없는 광우병에 대한 두려워 하며 떠는 패닉상태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실체가 없는 광우병이라는 근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네,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기저에는 현 정권에 대한 '불신'과 '분노'에 의한 것임을 부정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목사님도 알다시피 이달말 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국회의 과반수 이상을 한나라당에서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여론이 반영될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다수의 국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정당한 의견표시행위를 '두려움에 패닉상태에 빠진 균형감각을 상실한 자들'의 행동이라 치부하는 것은 너무 오버이십니다. 아니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인간의 미각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대량생산해내는 소고기 생산 방식과, 이 모든 것을 오직 경제적 논리만으로 다른 고려사항을 무시하며 이루어지는 작금의 소고기 협상들이 목사님 눈에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은혜롭게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시고 계시는 것인지요. 목사님께서 직접 언급하시지는 않았지만 이런식의 논리라면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도 성령의 충만함으로 설명되어야 하는 것인지요. 도대체 예수님 승천 후 마가의 다락방에 내려온 성령님의 역사가 어찌 이런 경우에 대한 지지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는지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촛불집회가 이루어지고, 국민들이 광장에 모여 자신의 의견을 표하고자 하는 행동을 해서 망해버린 나라가 하나라도 있습니까? 목사님 말씀처럼 왜 실체도 없는 '국론분열', '국가붕괴'등의 쓸데없는 걱정으로 패닉상태에 빠지셔서 바라보고 계신지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목사님과 정치적 의견이 다른 사람이 목소리 높인다고 해서 너무 패닉상태에 빠지지 마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냥 느긋하게 계셔도 큰 일 일어나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이 목사님 말씀하신 대로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으실 때인 것 같습니다. 만의 하나 제가 광우병이 걸리게 되었다면 이라고 생각해봤습니다. 처음엔 물론 두렵고 떨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안에 계신 성령님으로 인해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엔 두렵고 떨리지만 결국 이겨낼 수 있는 평정심. 그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갖고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저는 걸리지도 않고, 실체도 없는 광우병의 공포로 두려워 떠는 것이 아닙니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현 정부에 대해 분노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광우병으로 죽은 사람 한명도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고, 대운하를 건설하게 되면 경기가 부양되고 경제가 살아난다'라고 목사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무식한 사람도 목회자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가 무식하다고 저는 깔보지 않습니다. 다만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실체없는 광우병을 근거로 들어대며 반대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성령 충만하지 않은 자의 모습이다'라든지 '대운하의 물길을 통해 정신이 통할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인간과 인간을 소통하게 하신 예수님의 모습'이다라는 거짓말만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시간 나실때 이런저런 자료들을 통해 지식을 쌓으시는 것도 강력 추천드립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다보면 목사님 스스로 당신의 무식함으로 인해 자존감이 무척 낮은 자의 모습을 종종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바울이 회심하고 주의 큰 종이 된 것에는 바울 스스로는 부정하기도 했지만 '세상 초등학문'에 의한 지식이 한 몫 했을 것 같습니다. 목사님도 '세상 초등학문'에 약간이라도 더 관심을 가지신다면 설령 정치적 신념이 바뀌지 않는다 하더라도 좀더 세련된 말씀이라도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오늘 저는 집에 들어오면서 문 앞에 붙어 있던 '사랑의교회' 교패를 떼어내어 휴지통에 버렸습니다. 그 바로 전에는 제 가방과 핸드폰에 달려있던 사랑의교회 핸드폰 고리를 떼어내어 휴지통에 버렸습니다. 그리고 회사일로 바빠 깊게 생각할 시간도 갖지 못한채 그저 생각나는 대로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사랑의교회'를 떠난다는 것에 대해 그간 두려워하고 떨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평정심을 찾을 때인 것 같습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성경의 가르침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을 성경의 권위를 갖고 설교시간에 늘어놓는 것을 더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오목사님께서 사랑의교회 담임목사 자리에서 내려오시거나, 혹은 오목사님이 정말 성령의 충만함으로 크게 변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저는 사랑의교회 교인이길 거부하겠습니다. 그럼 성령님 안에서 평안하십시오.
5월 11일 오정현목사 국민일보 칼럼 읽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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