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을 한지 그새 1년이 훌쩍 지났다. 규율을 어기면 큰일이라도 날 것 처럼 노심초사하면서까지 까탈스러운 채식을 해오진 않았지만 스스로 나름 우수한 성적(?)으로 1년간의 채식생활을 잘 유지해온 듯 싶다. 물론 앞으로도 채식 생활은 아마도 계속될 듯 싶다. 그런데 며칠전에 1년이 넘도록 해온 채식을 홧김에 그만두려고 했던 적이 있다.
요즘은 식욕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한동안 저녁시간에 운동을 하고난 후에 저녁식사는 두유에 단백질 보충제를 먹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러고도 별다른 허기를 느끼지 않고 잘 지냈는데, 얼마전부터는 도저히 식욕을 억누를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단백질 보충제를 먹은 날은 물론이고, 허기가 느껴져 일부러 운동후에 저녁식사를 제대로 차려 먹은 날도 어김없이 밤 11시 정도만 되면 야식을 먹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정도의 상태가 되곤 했다.
암튼 그랬던 며칠전, 저녁 운동을 끝낸후 평소보다 더 허기를 느끼고 회사 식당으로 저녁을 먹을러 갔다. 주 메뉴는 소고기 무우국에 부 메뉴는 닭도리탕. 둘을 빼고 나니 밥하고 좋아하는 많은 나물 요리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물 반찬인가 하나와 김치 하나밖에 남지 않는 것이다. 배는 고픈데 밥하고 김치하고만 저녁을 먹게 된 것이다. 배가 고프니 역시 감정이 이성에 앞서게 되더니 갑자기 저 깊은 곳에서 화가 불끈 치밀어 올랐다.
무슨 영화를 누리려고 내가 이 배고픈 상황에 밥과 김치만 놓고 밥을 먹어야 하는지, 스스로 자기연민에 빠짐과 동시에 대상이 없는 분노를 느끼면서 채식을 안하고 말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닭도리탕과 소고기 무우국까지 모두 식판에 담에 당당히 자리로 돌아왔다.
지난 1년간 약간 판단이 잘 안서는 반찬이 나올 때마다 '혹시 여기에 고기가 들어갔나요?'를 물어보고 고기가 들어갔다고 하면 반찬을 받아오지 않는 통에 배식하는 아주머니들도 내가 고기가 들어간 것을 먹지 않는다는 걸 대충 알고 있었는데 닭도리탕에 소고기국까지 들고가는 모습에 배식하는 아주머니도 다소 의아하다는 눈길을 뒤로하고는 자리에 앉아 소고기국과 닭도리탕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버렸다.
그러고 난 이후에도 대상도 분명치 않은 화가 여전히 풀리지 않은채로 집에 와서는 아내에게 채식중단 의사를 밝혔고, 이유를 물어보는 아내에게 나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유를 당당하게 늘어놓았다. 아내가 '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해서 참을 수 없다면 채식을 중단하는 건 문제가 없지만 그런거라면 저녁도 잠시 집에 들러 먹더라도 계속 해봐라'라는 격려를 해주는게 아닌가.
암튼 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는 상태도 아니고, 허기가 사라진 상황에서 아내의 이야기도 듣다보니 1년동안 해온 채식을 중단하는 이유가 유치해도 너무 유치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채식을 계속 하기로 마음을 돌렸다. 나름의 의미있는 이유들을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약간 논리적으로는 헛점이 많아도 이곳 저곳에서 가져와서 시작하게 된 채식인데 이렇게 끝낼 순 없지.
그러고 보니 며칠전 최홍만을 여유있게 이긴 제롬 르 밴너가 채식주의라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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