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권을 갖게된지 십수년동안 한번도 빼놓지 않고 투표권을 행사해왔다. 기초단체장 선거처럼 후보 명단에 실린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더라도 우편으로 오는 홍보물을 보고, 나름대로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에게 표를 던지기도 했다. 나름의 머리를 굴려 광역단체장은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를 선택하고, 좀더 하위 선거는 소수당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표를 던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선거는 정말 지금까지 했던 모든 선거를 통틀어 가장 관심이 없는 선거다. 사실 금년 초부터 이번 대통령 선거는 일부러 투표소까지 가서 투표하는 수고조차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앞섰고, 불과 엊그제까지만 하더라도 이번 선거는 일부러라도 투표하지 않을 생각을 갖고 있었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 차선이 없으면 차악이라도 뽑아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던 당위는 허무함이 앞서는 이번 선거판에서는 무기력한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투표일을 휴일로 주지 말자는 이야기도 있을때에는 차라리 그렇게 해서 휴일이라도 반납하고라도 투표하지 않는 자의 의지를 표명할 수 있다면 오히려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오늘 문득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투표율이 낮다고 해서 대통령 선거가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다. 투표율이 일정 수준 이하로 나오면 대통령 없이 나라가 굴러가는 다른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표를 던진 사람들의 선호도에 따라 차기 대통령이 선출되게 마련이다.

대의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에 속해서 살아가는 내가 그 시스템의 최소한의 규칙은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나서서 정치판에 나서지 않는다면, 적어도 욕하고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에 빠진다 하더라도 그 최소한의 규칙은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투표를 격려하는 선전물에서 말하듯 '소중한 한표'라고까지는 인정 못하겠다. 그렇게 '소중한' 무슨 마음 갖고 던지는 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표를 던진다고 해서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없다. 솔직히 표를 던질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걱정이 태산이다. 내가 표를 던질 사람이 대통령이 될 확률도 거의 없을 터이니 死표가 될 것이 뻔하다. 그래도 할건 해야겠다. 적어도 다음 대통령으로 선출된 분에게 직접 투표장까지 나와서 그 분이 아닌 다른 후보를 선택하는 수고를 한 많은 국민이 있었다는 사실만이라도 보여줘야겠다.

투표를 앞두고 이미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에 빠져 무기력한 표를 던지게 되는 선거는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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