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흑백 액정을 가진, 그리고 동영상 재생 기능이 없어 오직 오디오자료만 담을 수 있는 나의 4세대 아이팟의 40GB 용량이 얼마부턴가 부족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루 평균 내가 듣는 음악의 양을 기준으로 잡아도 40GB를 꽉 채운 음악을 다 듣는데에는 수개월이 걸리고도 남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다.
수년전만 해도 1~2GB 용량의 mp3 player를 처음 사용하게 되면서, 하루에 듣고 싶은 음악을 위해 휴대용 CDP와 씨디 예닐곱장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더이상 바랄게 없었다. 그랬던게 불과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휴대용으로 들고다니는 아이팟에도 나의 거의 모든 Archive를 다 꾸리고 다니고 싶은 쓸데없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게다가 얼마전 발매된 160GB의 용량을 자랑하는 신형 아이팟이 나온 이후로 그 감정이 꿈틀거리더니, 연말까지 꽉 찬 프로젝트 스케쥴로 받는 스트레스가 이러한 구매행위를 통해 해소되려고 난리중이다.
주말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월요일을 앞둔 어제 밤 이러한 구매욕구가 극에 달했으나, 여기에 당할 순 없는 법. 어쨌든 지금까지 3년여간 잘 사용해온 지금의 아이팟이 정상적으로 사망(?)하기 전까지는 괜한 곳에 돈을 사용하진 않으리.
2.
얼마전부터 음악을 듣는 패턴을 파격적(?)으로 바꿨다. 아이팟의 40GB 용량을 음악으로 꽉 채우면 그 양이 정말 방대하다.(비록 감정적으로는 160GB 신형 아이팟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보이지만) 그러다보니 앨범 하나를 듣고 난 후 어떤 앨범을 들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꽤나 걸린다.
말러 교향곡 앨범 하나를 듣고나면 브루크너 교향곡이 '이젠 나를 들을 차례야'라고 떡 버티고 있고, 한쪽에서는 또 '금년에는 쇼스타코비치랑 친해지기로 했잖아'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언제는 좋아라 하더니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오?'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뾰루퉁한 목소리도 들리고, '맘은 늘 여기 있으면서 정작 찾아오는건 왜 뜸해?'하는 라흐마니노프의 지적에 뜨끔거리기도 하다. 이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와중에 '음악 감상의 기본을 잃어가는군'하며 불쌍하게 나를 바라보는듯한 베토벤과, 바흐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물론 평소에도 푸대접 받는 모차르트나, 나름 좋아라 하는 한국가요, 팝송등의 목록도 아이팟의 화면을 스쳐간다. 서태지나, 비틀즈, U2등은 괜히 미안스러워 못본척 지나가려고 애쓰는 대표적인 단골들이다.
암튼, 이런식으로 매번 앨범을 바꿔듣을때의 고민을 없애기 위해 한달전부터는 음악 듣는 패턴을 바꿔 아예 하나 고르면 고민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말러 교향곡을 들을라 치면 그냥 가차없이 1번부터 10번 교향곡까지 중간에 다른 앨범으로 갈아타지 않고 주욱 듣는다. 그렇게 2~3일 말러 음악만 듣고 난 후엔 다시 여러 음악가들 중에 고민하다 가장 마음에 와닿는 음악가 하나를 고른 후 주욱 듣는다. 브루크너 교향곡 다카시 아사히나 지휘 음반으로 1~9번 주욱 듣고,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바르샤이 지휘 음반으로 1~15번 주욱듣고, 베토벤 교향곡 1~9번은 간만에 사이먼 래틀 지휘로 주욱 들어준다. 서태지 데뷔 15주년을 맞이하야 다시금 집에 있는 그의 CD를 리핑해서 아이팟에 넣어놓고 1집부터 7집까지 주욱 들어준다.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1시간 남짓한 앨범을 들을때마다 다음 음악을 고르는 수고를 하지 않아서 좋다. 다행스럽게도, 이렇게 몰아서 한 음악가 음악을 들어도 질리는 느낌은 없다.
이번주는 다시 번스타인 지휘의 말러 교향곡 신전집으로 시작한다. 이게 끝나면 얼마전 도착한 서태지 15주년 기념음반 순례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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