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친분이 많은 사이일수록 그 사이에 서운한게 있으면 그 정도가 더 심해지고, 비슷한 강도의 다툼에도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까지 치달을 확률이 높아지는 법이다. 기대를 많이 했던 데에서 실망을 더 크게 느끼는 법.
열광적으로 좋아했던 '노무현'이기에 그에게서 느끼는 실망감도 더 컸던 여러가지 사건들이 이에 대한 좋은 예라면, 반대로는 평소 기대라고는 조금도 해보지 않았던 '이회창'이었기 때문인지 지금과 같은 절망과도 같은 대선정국에서는 차라리 그가 정말 대선후보로 나온다면 그를 찍어주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별 고민없이 드는 게 그 반대의 예일 수도 있다.
KBS 사장 정연주. 예전엔 한겨레 신문 논설위원이었고, 아마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이었던가 그랬던 것 같다. 몇년전 그의 두 아들 병역면제가 불거졌을때만 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쫒겨나다시피 국내를 떠나 정착한 미국에서 태어난 그의 자식들. 한국인이라는 국적은 소유하고 있지만 이미 미국식 문화에 미국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그의 자식에게 한국인으로서의 병역의 의무를 강요할 수 없었다는 그의 아픔섞인 고백은 충분히 공감할만 했다. 이런걸 물고 늘어지는 언론이나 보수세력들이 얼마나 치졸하게 느껴졌던지...
그런데 그렇게 미국인으로 자라 미국에서 살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아들이 정연주 자신이 그런 고백을 하던 2년전 이미 S사의 직원으로 국내에서 근무하고 있었다는 소식이 다시 불거지면서 언론의 주요 꼭지를 장식하고 있다. 언론의 말을 그대로 믿어버리자니 평소의 언론의 치졸한 행태를 볼 때 안심이 안될뿐더러 정연주라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배신감이 너무 커 감당이 안된다.
KBS 노조와의 마찰로 시끌시끌한 가운데에서도 KBS 사장직을 연임하는 것에 안달난 것처럼 보일 때에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고 자세한 정황은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다시한번 그의 입에서 그가 직접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정말 속사정을 들어보고 싶다. 나름의 속사정이 있는데 언론에서 곡해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겉 다르고 속다른 사람이었는지 꼭 그의 입을 통해 확인하고 싶다. 아니, 주요 언론에 그의 항변이 실리지 않는다면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도 찾아가 들어보고 싶다.
요즘 내가 정치에 무관심해지고, 막말로 '이번 대선에 이회창 나오면 난 이회창 찍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 건 그 많은 부분에 있어 소위 진보세력이라 불려왔던 이들에게서 느낀 배신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배신감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평소 가졌던 신뢰가 컸기에 그만큼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인듯 싶다.
암튼 정연주사장. 부디 내가 이해할 만한 변명거리가 있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납득할만한 변명거리가 없는 만큼 내 분노와 절망은 더 커지고, 그만큼 나는 더 보수화 될 터이니 말이다. 나도 이런식으로 보수화되는 것은 싫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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