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읽기 전에 이미 안심이 된다. 그의 책 <화차>와 <모방범>을 통해 그녀가 보여준 독특한 서술 방식이 소설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 않는, 그녀만의 독특한 색채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색채를 맘에 들어하는 나로서는 그녀만의 색채가 크게 변하지 않고 유지되면서 그녀만의 독창적인 새로운 이야기가 풀려 나온다는 것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야베 미유키 그녀만의 색채가 있다는 말은 그녀가 전형적인 틀을 하나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고 이야기의 내용만 바꾸어가며 풀어 놓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색채는 그녀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유의 색감을 일컬음과 동시에 그녀의 소설에 안정성을 부여하는 하나의 도구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될 수 있다. 건물을 지을때 지반을 다지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지반 다지기 작업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경우 아무리 설계도 상의 아름다운 건물이 한층 한층 올라간다 하더라도 이를 바라보는 이는 건물이 언제 무너질지 모를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와 같은 예에서 그녀의 안정적인 색채는 500쪽을 훌쩍 넘어가는 또 하나의 장편 추리 소설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하는 데 있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과 재미를 잃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하는 탄탄한 지반다지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름 없는 독>은 '스기무라 사부로'라는 대기업 홍보부 사내보를 담당하는 편집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진행하는 두번째 소설이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첫 소설은 <누군가>로 아직 이 소설을 읽지 않은 나로서는 이후에 읽어볼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1순위로 두고 있다. 앞으로도 미야베 미유키는 이 대기업 회장의 착하디 착한 사위인 '스기무라 사부로'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계속 낼 예정에 있다고 하니 흥미와 기대가 더해지는 느낌이다.
<이름 없는 독>에서는 크게 두가지 이야기가 평행선을 그으며 시작한다. 한 축은 편의점등의 가게에서 파는 음료수에 청산가리 독극물을 주입하고, 이를 구입하여 마신 불특정인이 사망하는 사건이다. 다른 한 축은 스기무라가 근무하는 홍보부 내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해고당한 '겐다 이즈미'와 관련되어 발생하는 일련의 일들이다. 이 독립적인 두 사건은 '기타미 이치로'라는 전직 경찰이었던 사립탐정을 연결고리로 작은 교점 하나를 찍는다. 이 작은 교점을 시발점으로 두 사건은 미야베 미유키만의 독특한 색채로 감싸이게 되고 하나 둘 교점이 늘어나더니 결국에는 두 사건을 인위적으로 나누기 힘들 정도로 하나로 묶여지게 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건들을 어색함이 없이 하나의 연결된 사건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로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적 재능 중의 하나로, 이 소설에서는 이렇게 사건들이 연결되어져가는 이야기의 재미를 또 한번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다.
소설의 제목 '이름 없는 독'이 의미하는 것은 사람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분노와 같은 감정을 말하는 것이다. 청산가리와 같은 독은 이름이 붙여져 있고 독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새집 증후군, 토양 오염등의 원인이 되는 독들도 검사를 통해 독의 성분을 분석해 낼 수 있고 이를 처리할 방법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독은 파악하기도 어렵고, 이를 처리할 뚜렷한 방법도 없다는 데에서 더 큰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독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사건의 경우 청산가리 독극물 사건의 경우 그 독의 근원과 원인이 어느정도 밝혀진다면 다른 사건의 경우 독의 출처는 알게 되지만 무엇이 그러한 독을 마음속에 품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밝혀지는 것 없이 결론을 맺는다.
실체가 있는 독, 물질로서의 독과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독을 비교하며 나름의 철학적인 명제를 소설의 결론부에 이르러 다소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모습도 보여주지만 이 두 다른 종류의 독의 대비는 그러한 구체적인 사유를 풀어놓는 데에서보다 그녀가 배치해놓은 이야기의 흐름에서 더 명쾌하게 찾아볼 수 있다. 청산가리의 독이 사람을 죽이고, 새집 증후군, 토양 오염의 독들이 사람을 아프게 하고, 정신적으로 병들게도 하지만 이러한 독을 제거한다고 하여 사람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천식은 새집증후군으로 인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친구들로부터의 따돌림으로부터 발생할 수 있다. 새집증후군도, 토양오염으로 인한 피해도 까다롭고 철저하게 예방하여 깔끔하게 마련한 새 거처가 결국은 사람의 마음이 품었던 독에 오염되어, 더이상 그곳에 거하지 못하고 떠날 수 밖에 없는 곳으로 변화하게 됨을 이 소설은 결론부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름 없는 독>은 독특한 색감과 잘 짜여진 플롯에 더하여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독성 강한 재미가 여전한 소설이었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난 이후부터는 '이 책을 다 읽지 않고는 다른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오직 이 소설을 빨리 끝내는 것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벌써부터 그녀의 다른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피어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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