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 주일, 사랑의교회 주일 대예배 설교 본문은 야고보서 2장 1절이었다. 오정현 담임목사께서 몇주전부터 계속해온 야고보서 강해설교중 하나였다. 설교 제목은 '참된 믿음의 고백'.

야고보서 2장 1절의 개역개정판 본문은 아래와 같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주전 설교라 그새 많이 잊어버렸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오정현 담임목사께서는 이 본문을 가지고 40여분간 설교하며 해당 본문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은채 '교회의 정직함, 솔직함'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언급했다. 강해설교. 성경 한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세밀하게 훑어보며 말씀을 평소보다 깊게 보겠다는 의도에서 하는 것이 강해설교일텐데 그날 설교는 이 본문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 없는 내용으로 성경 이곳 저곳의 말씀을 스크린에 띄워가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야고보서 2장 1절을 읽어보면 최소한 이 구절에서 가장 강조되어 표현된 단어가 '차별'이라는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아니 좀 더 말씀을 깊게 보다가 이 구절의 핵심 단어를 '차별'이 아닌 '영광', 혹은 '믿음'으로 뽑았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다. 설교자 자신이 강해설교를 준비하며 이 본문을 깊게 묵상한 것이 있다면 이 말씀을 근거로 풀이해주어 듣는 성도들에게도 똑같은 감동을 줄 수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랑의교회에 있다보면 설교 중간중간에 혹은 광고라는 명목하에 여러 정치적인 언사가 담임목사라는 성직의 권위를 등에 엎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처음엔 어이 없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것까지는 그냥 무시하고 넘기려고 노력해왔다. 사학법 개정은 사탄이 원하는 것이므로 기독교인은 결사 반대해야 마땅하다고 할 때에도 그냥 넘겨버렸다. 그 나름 꽤나 조심하면서 마치 '그래도 할말은 해야겠다'는 양 흘려버리는듯 말하는 모양새를 곱게 넘겨보았다. 내가 생각할때에는 아무리 헛소리처럼 들린다 하더라도 어쨌건 본인의 진심에서 나름 성경적인 의미를 갖고 해석하려 하는 것에서 일단 결론은 차치하고 그런 성의만큼은 인정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을때마다 불끈하기에는 내 자신에게 너무 피곤한 일이기도 했다.

다 좋다. 사학법 개정 결사 반대를 외쳐도 좋고, 특새 마지막날 대형 태극기를 펼치고 애국가를 불러도 좋고, 다 좋다. 뭘 하든 열받아 불끈하지 않고 다 알아서 걸러 들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단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설교를 하려고 본문을 정했으면 그 본문에서 하나님의 어떤 메세지를 찾아내어 성도들에게 들려줄것인지 고민하고 연구했다는 것은 확실히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같은 본문을 가지고 전혀 다른 묵상의 결과를 낸다 해도 그 나름대로 의미있다 해줄 수 있다. 하지만 말씀은 제쳐두고, 그날의 말씀이 뭘 말하는지 연구해서 그 말씀의 의미를 전하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말을 위해 본문은 제쳐두고 맘에 맞는 본문들만 이리저리 찾아 다닌 결과를 보여준다는 것은 아직 용납하기 힘들다.

말씀을 가지고 정말 해괴망측하게 해석을 해도 말씀에 대한 진정성이 있다면 그 진정성에라도 감명 받을 수 있지만 진정성이 없는 말씀의 다룸은 아직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적어도 강해설교라는 본뜻을 벗어나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 설마 이것도 강해설교라고 야고보서 설교 다 끝나면 '야고보서 강해'라는 제목으로 국제제자훈련원 통해서 강해설교 책 한권 나오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뭐, 개인 블로그 만들어서 올린다면야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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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186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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