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명적이지 않은 수준의 스포일러 약간 포함 *
'식스센스' 이후 반전 영화를 표방하며 봇물이 터지듯 밀려들던 고만고만한 영화들에 이미 질린지도 한참이다. 사실 '식스센스' 혹은 '유주얼 서스펙트'가 반전영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건, 말 그대로 제대로 된 반전이 영화속에 녹아들어 있었기 때문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제대로 만들어진 반전영화가 있다고 치자.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반전을 대면하기 직전까지 그곳에 그런 것이 또아리를 틀고 숨어 있었다는 것 조차 전혀 예상치 못한 채 영화의 스토리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다르게 말하면 '뭔가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뭔가 여기에 숨겨져 있다'는 식의 의심조차 하지 못한 무방비 상태에서 관객은 반전에 노출되는 것이다. 설령 추리극의 형태를 띄고 있어 관객이 영화를 보는 내내 여기도 의심해보고 저기도 의심해 본다 할지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때에도 결국 반전은 관객의 의심 영역 테두리 밖에서 또아리를 틀고 숨어있다가 헛다리 집고 방심하는 틈을 타 잽싸게 뒷통수를 가격하며 달려든다. 엄밀히 말한다면 'A 아니면, B 아니면 C 일거야'라는 예상을 하고 그 중에서는 A와 B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C로 판명되는 것은 반전의 축에 끼지 못한다. 또한 파악은 잘 안되지만 A라는 영역 또는 인물에게 문제의 핵심이 있다고 의심이 들게 되고 결국 그 영역 내에서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 또한 반전이라 할 수 없다.
'극락도 살인사건'은 이러한 엄밀한 기준을 두고 따져본다면 제대로된 반전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사건의 핵심을 쥐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를 예상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면서도 동시에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는듯이 보인다. 이 영화속에는 유명한 배우, 낯이 익은 배우들이 많이 출연한다. 이 배우들 모두가 범인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배우들의 영화 밖에서의 인기도나 인지도를 따져볼 때 사건의 핵심을 붙들고 좌지우지할 만한 인물로 캐스팅 될 배우가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의외로 답이 쉽게 나올 수 있다. 게다가 이미 반전영화의 흘러가는 모양새에 이미 익숙해져서인가? 밀실살인극을 형태를 표방하며 한사람 두사람씩 차례대로 살해되어 갈 때, 화면에서 보여지는 수상쩍은 인물들보다는 그 중 가장 수상쩍지 않은 인물에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를 자연스레 돌리게 된다. 이런 식으로 접근해도 대충 'A 아니면 B 아니면 C'정도의 가늠으로 핵심 인물을 찍어낼 수도 있을만하다. 범인이면서도 범인이 아닌척 순진한 얼굴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연기자가 과연 누구일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쉽게 범인을 찾아 낼 수도 있다.
'극락도 살인사건'은 이처럼 완벽한 수준에 도달한 '반전영화'로 치켜세우기에는 나름의 치밀한 설정이 오히려 약간의 독이 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의심만 가득한 상황에서 확신으로 전개해 풀어나가는 방법의 묘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관객들의 의심과 예상을 모두 뛰어넘으려고 억지스러운 설정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괜한 의심거리만 잔뜩 던져 놓고는 결과적으로는 전혀 말도 안되는 곳에서 떡하니 '이게 정답이오'라는 식으로 보는이를 허탈하게 하지도 않는다.
'극락도 살인사건'은 적절한 의심의 분산을 통해 이것인듯도 싶고, 저것인듯도 싶고 하는 의심을 보는 곳마다 조금씩 흩뿌려 놓았다. 이러한 갸우뚱한 장면들이 영화의 적재 적소에 잘 포진되어 있다. 극소량의 조미료가 음식의 맛을 살리듯 이러한 의심의 분산이 극의 흐름을 어지럽히지 않고 적절한 긴장감을 곳곳에 배치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해주고 있다. 또한 초반부터 핵심 인물에 확신에 가까운 의심이 몰리지 않도록 틀을 짜임새 있게 엮어 놓았다. 핵심 인물에 의심을 품어 볼 수는 있지만 이러한 의심을 지속하려 할 때 사건의 앞뒤에 모순이 발생한다는 점을 관객 스스로 인정하게 만드는 플롯도 교묘하게 집어넣어 놓았다. 의심은 할 수 있지만 확신할 순 없고, 긴장의 끈을 잠시 놓으면 지금까지의 의심은 다른 곳으로 분산되기 시작한다.
이런 모순된 상황속에서, 뭔가 모를 의심이 스멀스멀 솟아오르는 상황에서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상황들을 한마디로 아울러 해결하여 마무리 짓는 깔끔한 마무리가 필요하다. '극락도 살인사건'에서도 이러한 의심의 분산을 깔끔하게 설명할 하나의 해답을 제시하는데 이 해답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상력을 뛰어넘는 수준이라는 것에 그 묘미가 있다. 어떻게 보면 다소 억지스러운 해답일수도 있겠지만 상상력을 이정도 수준까지 발휘했다는 것에서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그 전까지 보여주었던 여러 모순적인 상황들을 설명하려다 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식으로 어이없는 꼬리를 붙여버리고 도망쳐 버리는 영화가 허다한데, '극락도 살인사건'은 약간의 억지를 감수하고 대다수의 모순을 깔끔하게 봉합해버리는 방법을 사용했다.
살인의 현장에 범인은 있지도 않았고, 실제 살인을 저지른 것도 범인이 아니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따로 있는데 실제 범인은 손에 피 한방울 묻히지 않은 자이다. 그렇다고 범인이 살인을 지시하거나 살인이 일어날 것이라 예상한 것도 아니다. 범인이라 부르지만 그는 앞으로 추가적인 살인이 누구에 의해서 어디에서 일어날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범인이지만 앞으로 무슨일이 일어날 지 몰라 초조해하는건 남겨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다. 아니 실제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으니 범인이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모든 일의 핵심이니 범인이라 부르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니다.
이러한 난감한 상황의 매듭을 과연 어떻게 깔끔하게 풀어낼 것인가. 궁금하다면 김한민 감독의 상상력이 이러한 매듭을 어떻게 풀어가는지 '극락도 살인사건'을 통해 한번 확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정도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시나리오, 이정도 짜임새로 만들어낸 영화라면 충분히 박수쳐줄만 하지 않을까.
'About > Movies&Drama'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라따뚜이 (1) | 2007/08/04 |
|---|---|
| The Illusionist (0) | 2007/07/25 |
| 극락도 살인사건 (2) | 2007/07/19 |
| 우아한 세계 (0) | 2007/07/18 |
| Copying Beethoven (0) | 2007/06/25 |
| Deja Vu (0) | 2007/05/2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