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처음 이 영화의 장르를 '생활 누아르'라 불렀는지 모르지만 정말 재치있는 명명이다. 조직폭력배의 삶을 그리는 영화인데 조직생활의 잔인함과 비정함을 주요 주제로 삼지 않았으니 그냥 '누아르' 장르라 부르기엔 다소 어색하다. 조직폭력배의 일상을 희화화 하여 코믹한 전개 일변도로 흐르는 영화도 아니므로 '코믹'장르라 부를 수도 없다.
물론 '우아한 세계'는 조직에 몸 담고 있는 폭력배 '인구'의 삶을 통해 조직생활의 잔인함과 비정함을 보여주고 있다. 피가 낭자하진 않지만 폭력이 있고 배신이 있고 살인이 있다. 한국영화 사상 최대규모의 자동차 추격신이라 알려진 액션가득한 장면도 있다. 또한 주연을 맡고 있는 송강호만의 코믹한 장면도 심심치 않게 등장해 '넘버3'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코믹한 조직폭력배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거기에 조연으로 나오는 '오달수'라는 배우가 있다. '오달수'가 나오는 영화 장면 중 웃기지 않은 장면이 지금까지 한 장면이라도 있었나. 오달수가 나온다는 것은 곧 코믹한 장면이 있다는 것을 보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우아한 세계'에서 그려지는 송강호는 다른 어떤 모습보다도 먼저 한 가정의 가장으로 위태위태하게 서 있는 모습이 부각되어 있다. 깡패짓을 해서 벌어먹고 살긴 하지만 어쨌든 그가 깡패짓을 해서 먹여살리는 가족들인데 인구는 그러한 가족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가족들에게 큰소리 한번 치지도 못하는 이 시대의 힘없는 남편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다. 심심하면 수압이 낮다는 이유로 수돗물이 끊기고, 초인종 벨이 고장나 택배기사가 문을 두드려야 하는 곳에 가족들과 살고 있는 인구의 꿈은 영화에서나 나올만한, 외국에서나 찾을 수 있을만한 멋드러진 집한채 장만해 나름대로 실추된 가장의 이미지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소외된 가장으로 그려지는 인구의 삶은 가정외의 삶에서도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 인구 자신이 큰 은혜를 입었다고 늘 여기고 모시는 조직의 회장님은 그다지 인구를 소중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같은 조직에 몸 담고 있는 회장님의 친동생은 같은 조직안에 있는 인구가 눈엣가시일 뿐이다. 그것뿐인가 어릴적부터 같이 자라온 유일한 친구녀석은 적대 관계에 있는 조직에 몸을 담고 있어 마음을 나누기 어렵다. 인구가 어려웠던 시절 100만원을 친구에게 구하려고 연락하자 몇달간 종적을 감춰버리는 게 바로 이 어릴적 친구다.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일뿐 친구로서 힘이 전혀 되어주지 못한다.
죽을뻔한 고비를 넘긴 인구가 여차저차하여 안정을 되찾고 꿈에 그리던 집을 장만한다. 오빠처럼 유학을 보내달라고 조르던 딸, 아빠가 칼에 찔려 죽었으면 좋겠다고 일기장에 적어놓던 딸 또한 소원대로 유학길에 오를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여전히 소외된 가장으로서의 인구의 모습이다. 자녀 뒷바라지를 위해 아내마저 외국길에 오를 때에도 별다른 감정 표현 없이 얼버무린 채 떠나보낸다. 기러기 아빠의 처량한 모습은 병원에서 무심하게 당뇨진단을 내리는 의사 앞에서 잠시 그 숨겨놓았던 감정을 잠시 끄집어 보여주지만 거기에서 멈춘다. 그가 그의 소외감으로 인한 억압된 감정을 표출하는건 먹고있던 라면그릇을 던져버리는 정도일 뿐이다. 그것마저도 다시 걸레를 들고 구부정한 자세로 수습에 들어가야 하는 인구의 모습이다. 인구가 흘리는 눈물은 처량한 눈물임에는 분명하지만 궁색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만 흘러내린다.
'생활 누아르'라는 그 만의 독특한 장르명을 붙여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우아한 세계'는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 '누아르'라는 장르를 달고 나온 영화, 또는 조폭생활을 소재로 했던 수많은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각을 찾아내어 보여주었다. 사실 조폭이라는 소재를 사용하긴 했지만 영화속에서 그려지는 인구의 모습은 폭력배의 삶에서만 특수하게 발견되는 삶의 단편이라기보다는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던 간에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가장의 보편적인 삶이 모습을 잘 포착해서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부가적으로 덧붙여진 조폭생활이라는 소재는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도록 하는 좋은 양념이 되어주고 있다.
소위 '미드'이 열풍이 한국사회에 불어닥치고 있지만 그 열풍이 미국에서이 그것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얼마전 시즌 6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Sopranos'라는 드라마가 있다. 갱조직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한 남성의 조직 내에서의 일들, 그 자신의 내면, 가정생활등에 대해 그린 드라마다. 미국에서는 이 드라마의 인기가 대단해 시즌 6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끝을 내자 각 방송사의 대표적인 뉴스 프로그램 다수에서 이 드라마의 마지막 끝맺음의 의미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하는 꼭지를 내보내기도 했다. 시즌 6의 첫 방영일과 방영시간에 대한 소식도 각 뉴스에서 다루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국내에서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갱단의 삶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문화가 우리의 그것과 다소 다르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우아한 세계'를 드라마 형식으로 바꾸어 다시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식 'Sopranos'처럼 말이다. 큰 테두리는 조직폭력배의 삶의 모습으로 세우고, 그 속은 가장의 텅빈 마음속을 심도있게 들여다보고, 가정내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보는 거다. 너무 잔인하고 야비한 조직폭력배의 삶을 많이 그리지 않고, 또한 너무 코믹한 내용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면 이 또한 괜찮은 드라마 소재로 사용될 수도 있을듯 한데 말이다.
'우아한 세계'가 보여준 이야기의 틀과 그 흐름을 2시간 남짓한 영화 한편으로 끝내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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