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지금 다니는 회사를 입사하던 당시, 회사에서 요구한 영어능력에 대한 증명은 토익점수였다. 하지만 토익은 말하기 영어의 능력을 평가하지 못하고, 회사생활에서 많이 요구되는 영어 능력은 말하기 영어로 근본적인 모순이 존재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던가 부터 회사에서는 SEPT(Spoken English Proficiency Test) 점수를 영어능력 증명의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SEPT의 경우 평가 기준에 대한 모호함이 큰 약점이었고, 회사에서는 이를 또 대체할만한 괜찮은 도구를 찾으려 백방으로 노력하는 듯 했다.

얼마전 회사 게시판에 전화를 이용해 말하기 영어를 테스트하는 한 테스트에 대한 파일럿 테스트 지원자를 선착순으로 모집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개발한 시스템에 기반한 테스트라 하는데, 전화상으로 15분 정도 질문에 답을 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영어 능력을 평가해 10여분만에 그 결과를 보여주는 시험이었다. 신뢰도가 높은 수준의 평가 결과를 보여준다고 하는 해당 시험에 대한 적합성을 테스트해보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선착순 100명이라는 내용에 재빨리 신청을 했다.

이 시험의 테스트 항목은 미리 문서상으로 몇개의 문장을 주고 지시하는 문장을 읽는 항목, 거의 한단어 수준으로 대답하면 되는 A or B 형식의 질문에 답하는 항목, 문장의 절을 섞어서 제시하면 이를 문장으로 조합하여 대답하는 항목, 들려주는 문장을 그대로 따라서 말하는 항목, 몇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20초동안 영어로 답하는 항목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시험의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는 내용을 보니 꽤 쉬운듯 했지만 실제 시험을 치뤄보니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문장을 읽어주고 이를 그대로 따라하는 항목도 문항이 뒤로 갈수록 문장이 길어져 앞의 몇 구절만 웅얼거리다 끝나기 십상이었고, 문장을 조합하는 항목도 여러개의 절로 이어진 항목이 나오면서 혼돈스럽게 만들었다. 1분도 아닌 20초만에 의견에 답하는 것도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시험을 끝내고 10여분만에 나온 결과를 보니 뭐 SEPT로 테스트 했던 수준과 비슷한 점수가 나왔다. 영어 단어는 비교적 많이 알고 있어서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을 어렵지 않게 이해한다는 내용과, 영어로 말할 때 자주 문장이 끊기고 머뭇거리는 부분이 많지만 어쨌든 대화가 가능한 정도의 수준.

예상외로 여러 항목중 상대적으로 가장 낮은 점수가 나온 것은 다름아닌 주어진 문장 읽기 항목이었다. 테스트를 하는 그 순간에 주어지는 문장을 읽는 것도 아니었고, 시험 며칠전에 전달된 문서에 있는 10여개의 문장들을 '몇번 문장을 읽으시오'라는 안내에 따라 읽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시험 전에 미리 여러번 문장을 읽어 연습할 수도 있는 항목이다. 그래서 난이도가 가장 쉬운 항목이라고 예상했던 항목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낮은 결과를 보였다는 것은 정말 의외였다. 20초간 의견을 말하는 항목도 사실 의견을 짧은 문장으로 즉흥적으로 조합해 이야기 하는 것에 능숙하지 않기에 더듬거리고 머뭇거리다가 끝났는데 이보다도 못한 점수가 나올 줄이야.

즉흥적으로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영어로 조합해서 말을 하다 보면 당연히 발음은 신경도 쓰지 못하고 머뭇머뭇하고, 더듬거리며 말하긴 하지만 이미 주어진 문장을 읽는건, 비록 native의 발음과는 천지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충분히 또렷하고 명료하게 발음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결과로 보여지는 설명에는 내 발음을 native가 이해하며 들으려면 무척이나 신경을 써야 하고, 많은 부분에서 intonation이 native와 너무 다르다고 되어 있었다.

단어를 많이 알고, 즉흥적으로 문장을 구성해 영어로 말하는 능력을 기르면 뭐하나.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말을 하는데 정작 듣는이는 내가 도대체 어떤 단어를 사용해서 무슨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인도인 직원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다 보면 도대체 지금 인도말을 하는 것인지 영어를 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발음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것을 본다. 영어를 Native로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혼란스런 인도식 발음의 영어는 명쾌하게 들리는 반면 한국식 영어 발음은 가장 알아듣기 어려운 발음 중 하나라는 말을 익히 들어왔지만 그래도 믿지 않았다. 한국식으로 한 단어 한단어 또박또박 말하는데 왜 알아듣기 어렵겠냐는 생각이었는데, 이번 시험의 결과는 그렇게 믿고 있었던 내 발음이 '최악'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해주고 있었다.

시험 결과에 충격 아닌 충격을 받고, 이제는 영어 문장 발음하는 것에 대해 시간을 할애해서 고치려고 다짐한다. 리스닝도 좋고, 다양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이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의 상당부분을 뚝 떼어서 처음 영어를 배우던 중학생 시절로 돌아가 어이없을 정도로 쉬운 영어 문장을 듣고 native의 억양을 그대로 따라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연습하면 실력이 느는 건 당연한 일일터이니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노력을 기울여야 겠다.

p.s. 해외출장에서 나름 명쾌하게 말을 했다고 생각하며 한 문장을 뿌듯하게 건네고 나면 예상과 달리 'Sorry?'라는 답변이 상당히 많이 돌아오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했다. 일부러 무시하려고 못들은척 하는 줄 알았더니, 젠장, 정말로 내 발음을 이해 못한 것이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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