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3권 도합 총 1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모방범을 다 읽었다. 1권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왜 이 책의 제목이 '모방범'인지가 궁금했다. 누군가 이미 저지른 범행을 그대로 따라해서 저지르는 범인을 모방범이라고 일컫는데, 이 책의 종반에 다다를 때까지 원조(?)범인이 저지른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이 될 뿐 모방범이 나타나 이를 본딴 유사한 범행을 일으킬만한 이야기는 전혀 진행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속에 빠져들다 보니 책 제목이 '모방범'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흐름은 제목과 전혀 다른 원조 범죄의 이야기로만 가득하다는 점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왜 이 책의 제목이 '모방범'이어야 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소설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다. 이 '모방범'이라는 단어는 범인을 가리고 있던 불투명 막을 걷어내고 범인의 실체를 드러내는 중요한 소재로 사용된다.
1권에서는 연쇄살인 사건을 피해자,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다루며 보여주고 마지막 부분에 범인의 실체에 대해 보여주고 끝난다. 2권에서는 다시 이 사건을 범인의 입장에 서서 처음부터 다시 훑는 과정을 거친다. 1, 2권을 통해 독자는 이 소설에서 다루는 주요 범행의 앞면, 뒷면을 꼼꼼히 바라볼 수 있게 되어 범죄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토를 완료할 수 있도록 해준다. 3권에서는 이제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다루게 된다. 2권까지 읽었지만 여전히 답답하고 초조한 마음을 지닌채 3권에 들어선 독자들에게 작가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을 전개하며 과연 이 이야기가 어떻게 결말을 내릴 것인지 알 수 없는 혼란속으로 인도한다. 과연 답답한 독자들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만들며 이야기가 끝날 것인지, 아니면 이렇게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이야기가 흘러 갈 것인지 또 한번 읽는 이의 마음을 종반으로 이끌어 간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은 잡지에 5년간 연재된 소설이라고 한다. 5년이라는 연재기간동안 이 소설을 끌어오며 독자들은 나름의 통쾌한 결말을 바랬을 것이다. 물론 범인은 밝혀지고, 잡힌다. 하지만 통쾌한 결말이라 보기 어려운 이야기로 마무리가 된다. 폭력을 행사하는 자의 쾌감은 맞는 이가 고통을 느낄때 극대화 된다. 공을 차는 자의 쾌감은 원하는 방향으로 힘차게 공이 날아갈때 극대화 된다. 폭력을 행사하는데 맞는 이가 그다지 고통을 느끼지도 않는 듯 보이면 오히려 분노가 더해질 뿐이다. 공을 힘껏 찼는데 날아가는건 벗겨진 신발이거나 혹은 하늘로 치솟아 날아가는 공의 궤적이라면 실망이 엄습해온다. 손녀가 납치됐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도, 납치범의 조롱섞인 전화를 받을 때에도, 또 손녀가 이미 죽었음을 확인했을 때에도 나름의 평정을 잃지 않았던 인물은 오히려 범인이 검거된 이후에 술에 취해 절망한다. 소설이 아닌 실제의 살인사건에서도 사실 일반인이 느끼는 통괘함이라는 감정은 범인 검거 그 자체에서 온다기 보다는 범인이 수치감과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에 비로소 찾아온다. 정의의 실현은 범인 검거라는 사실뿐 아니라 범인의 표정과 행동에서 정의를 인정하는 모습에서도 구현되는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다다르면서 다소 억지스럽거나 어설픈 이야기 진행과, 90도에 가까운 내리막길을 치닫듣이 클라이맥스가 결론으로 향하는 것 들은 이 소설에서 약간 아쉬운 점들이다. 하지만 감히 예측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는 인정해줄만하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작은 힌트들이 나타날때마다 나름의 추리를 하면서 읽어갔지만 그 어느 하나도 이야기의 흐름을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다. 그만큼 이야기의 흐름은 상투적인 모습 없이 독창적인 흐름으로 계속 진행되었다.
소설 '화차'를 통해 접하게 된 미야베 미유키. '모방범'을 통해 제대로된 일본 장르 작가 한명을 알게 됐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이 작가의 다른 책들도 시간과 기회가 될 때마다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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