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제 2권. 558페이지의 1권에 이은 532페이지 짜리 2권. 이제 531페이지짜리 3권만 남기고 있다. 너무 자세한 스포일러를 말할 수는 없기에 두리뭉실하게 이야기의 흐름을 요약하면, 이 소설은 추리소설로 연쇄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1권에 대한 글에서 밝혔듯이 방대한 분량이라는 사실이 약간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로, 연쇄살인의 범인은 1권 마지막 부분에서 알 수 있게 된다.
2권은 마치 볼 수 없었던 달의 뒷면을 비춰주는듯 1권에서의 살인사건들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다. 분량도 만만치 않은데, 1권에서 이미 다룬 이야기들을 다른 시각에서 보여주는 것이 지루한 페이지수 늘리기 수법 아닌가 하는 의심은 하지 않아도 된다. 같은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결코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더 새롭고, 더 놀라움을 안겨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2권을 읽으면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추리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중의 하나는 바로 '누가 범인인가'라는 사실일 것이다. 대학교 1학년때 읽었던 3권짜리 '모레'라는 소설이 있었는데,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사실은 3권중 가장 마지막권 마지막 페이지의 단 한문장에 압축되어 있었다. 2권까지 신나게 몰입해서 읽고는 바로 3권으로 넘어가 흥미 진진하게 읽던 도중 책을 잘못 잡는 바람에 우연히 마지막 페이지가 펼쳐졌고, 소설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담겨져 있는 바로 그 문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한문장을 읽음으로 인해 그때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어오던 소설 전체가 맥이 빠져버렸다. 그 소설은 그 마지막 문장에 담긴 사실을 도중에 알게 되는 것 자체가 비극이었다.
그런데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은 그런 범인을 1권의 후반부에 허무하게 밝혀버린다. 그것도 모자라서 1권에 다룬 사건을 다시한번 2권에서 약간의 살을 덧붙여 반복해서 보여주는 시도를 하고 있다. 1권은 그나마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흥미진진함이라도 있었지만 이미 범인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앞에서 다 보여준 사건을 다시 늘어놓는 2권의 재미는 과연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쉬운 예를 들면 뭐 이렇게 들 수 있겠다. 2007년 6월인 지금에서 내가 사고를 당해서 의식이 불명이 된다거나, 국내 소식을 전혀 들을 수 없는 먼 곳에 다녀와야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2007년 12월 말에 다시 의식을 되찾았다거나 국내소식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고 해보자. 오랜만에 듣는 소식이 '한나라당의 이명박씨가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라면 다소 놀랍기도 하겠지만 전체적으로는 결국 큰 사건 없이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됐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그간의 자세한 상황이 궁금하기도 하겠지만 그다지 큰 사건들은 없다는 예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듣는 소식이 '차기 대통령으로 민주노동당의 권영길씨가 당선되었다' 였다면 어땠을까. 이 경우는 결론을 알았다고 해서 그냥 '아, 권영길씨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됐구나' 하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면 당장 '그간에 도데체 무슨 일들이 있었길래 권영길씨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가'하는 궁금증이 폭발적으로 일어날 것이다.(민노당 대표의 대통령 당선 시나리오를 이런 식으로 사용하게 되어 유감이다ㅡㅡ;)
위의 예와 비슷하게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제 2권은 범인이 누구인지 뻔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야기의 전개가 늘어지거나 지루한 모습이 없이 읽는이로 하여금 궁금증을 주체할 수 없도록 만들고 사건의 실체를 한꺼풀 한꺼풀씩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물론 2권이 이렇게 달의 뒷면을 멋들어지게 보여주는 것만으로 이야기가 끝을 맺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더 숨을 죽이며 읽어야 할 500여페이지 분량의 3권이 남아있다. 어느정도 독자의 숨이 돌려지긴 했지만, 아직 수면아래에 남아 숨죽이고 있는 몇가지 궁금증들을 미야베 미유키는 2권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게 만든다. 그리고 읽는이로 하여금 다시 폭발하는 궁금증을 안고 3권을 펼쳐들도록 이끌고 있다. 사건의 범인도 알았고, 사건의 내막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답답한 상황이 남아있는데, 과연 3권에서는 이런 답답한 상황을 어떤식으로 이끌어 결론으로 향하게 될지 흥미진진하다.
이제 3권으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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