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 '모방범'. 국내엔 총 3권으로 번역되어 나왔고 현재 1권을 다 읽고 2권에 막 들어가는 참이다. 1권이 558페이지, 2권이 532페이지, 3권이 531페이지로 총 1621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를 읽고 이 작가의 작품에 삘(?)이 꽂혀서 잽싸게 구입해버렸다. 일본 작가 중에 내 스타일에 맞는 소설가는 무라카미 하루키 이후 두번째인 것 같다. 일본 영화도 그렇고, 일본 드라마도 그렇고, 일본 소설도 그렇고 대개는 정말 스타일 안맞는다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이질적으로, 작위적으로 느껴져 거부감이 앞서는게 일본의 작품들이다. 그런데 정말 가끔씩 맘에 드는 스타일의 영화, 드라마 그리고 소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앞의 거부감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큼 강한 애착을 느끼게 만든다. 하고있던 모든걸 중지하고 오직 해당 감독의 영화, 해당 드라마, 해당 작가의 소설 모두를 한자리에서 섭렵하고픈 충동. 일본이라는 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그 무엇 때문에 그런걸까? 설명할 수 없는 요상한 중독성이다.
'모방범'은 추리소설이니만큼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다. 1621페이지에 담을만한 방대한 내용인지는 아직 끝까지 다 읽지 않아 모르겠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독특한 스타일은 그 어떤 부분에서도 지루함을 느끼게 하지 않고 한장 한장 재미가 솔솔 느껴지도록 하는 그만의 묘한 재능을 여실없이 보여준다. 연쇄살인사건을 다루는 추리소설이기에 이야기의 주된 흐름은 연쇄살인범의 피해자의 주변, 연쇄살인범을 검거하려 노력하는 수사팀의 주변, 그리고 연쇄살인범의 주변을 맴도는 식으로 되어있지만, 사건의 해결 자체에만 촛점을 맞추지 않고 각 영역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의 단면들과 의식을 하나하나 펼쳐보여준다. 연쇄살인 사건이 빨리 해결되길 바라는 독자의 욕구가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에겐 가장 큰 욕구일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사건의 빠른 진행을 포기하고 늘어놓는 이야기는 다소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이야기를 지루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 십상인데, 바로 여기가 미야베 미유키만의 장점이 맘껏 발휘되는 지점이다. 사건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메인 사건과 연결된 고리들임을 보여주어 이야기가 딴길로 새고 있지 않음을 확인시켜줌과 동시에, 그 여러 고리들의 이야기들도 전혀 지루하지 않도록 배치해 이끌어가고 있다.
아직 이 소설을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 소설속의 많은 내용을 말할 수는 없을테고, 나 또한 지금 막 1권을 끝낸 상태라 아직 이 소설의 전체를 바라볼 위치에 서있지 않다. 다만 나보다 먼저 이 책 3권을 모두 끝내버린 아내가 권수를 거듭해가며, 장이 넘어갈때마다 감탄의 소리가 더해졌음을 볼때 점점 더 흥미롭고 잘 짜여진 내용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된다.
이 소설을 아직 읽지 않는 분들의 감상을 깨는 스포일러 수준의 소개를 피하며 소설의 내용에 대해 한가지 이야기를 하면, 이제 1권을 읽었는데 어이없게도 연쇄살인의 범인이 밝혀진다는 사실이다. 16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1권 마지막에서 이미 범인이 밝혀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일이다. '도데체 남은 두권은 무슨 이야기로 채우려고 이러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은 그간의 수사과정과 비교해서도 어이없을 정도로 허망하다. '설마 이 자가 범인인거 맞아?'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다. 범인은 밝혀졌는데 남은 2권의 분량을 생각하며 오히려 궁금증은 더해간다. '뭐야 이거?'. 미야베 미유키의 진가가 발휘되는 부분인 것 같다. 다들 추리소설이니 범인은 마지막에 밝혀지겠지 하며 마음을 놓고 있는데, 그런 안일한 생각 자체의 뒤통수를 한대 후려갈긴다. 조그만 미끼나 떡밥정도를 생각하고 있는 독자에게 아예 산채로 먹음직스러운 돼지 한마리 툭 던져주는 꼴이다.
이제 겨우 1권 읽었다. 너무 흥미진진해서 다른 글자는 눈에도 안들어온다. 2권, 3권이 남아있음이 아쉬움이면서 동시에 위안이다. 자, 2권으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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