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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Auster의 'Oracle Night'.

참으로 오랫동안 시간을 질질 끌며 읽은 소설임과 동시에 원서로 읽은 소설중에 가장 단기간에 읽은 소설이기도 하다. 처음 이 소설을 읽을 때에는 책 읽는 것 자체에 엄청 게을렀던 시기였는지 한참의 시간을 끌며 겨우 읽었다. 순간 순간의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워낙 띄엄띄엄 읽다보니 전체적인 이야기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은 채 읽게 되버렸다. 물론 이렇게 뜸을 들이며 읽은 이유가 이 책이 재미없기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기에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던 순간, 별다른 망설임 없이 다시 소설의 앞장으로 돌아가 책을 펼쳐들었고,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소설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런 식으로 읽은 채로 그냥 끝내버릴 순 없다는 강력한 내면의 소리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다시 읽게된 두번째 독서에 걸린 시간은 정말 순식간이었고, 그제서야 이 소설의 전체적인 구조가 한눈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렇게 느릿느릿 한번, 재빠르게 한번 읽는 사이 페이퍼백으로 된 책은 보기 흉할 정도로 너덜너덜해져버렸다.

폴 오스터의 소설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Oracle Night'는 작품성을 거론하기 이전에 일단 오스터의 소설중에 가장 재미있는 소설중의 하나로 꼽을만하다. 여러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여러겹으로 겹쳐 진행되는 방식은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의 결론으로 향하고 있어 난삽하지는 않다. 한권의 소설을 읽었는데 마치 서너권의 소설을 읽은듯한 느낌을 느끼는건, 그의 'Book of illusion'을 읽고나면 마치 여러편의 영화를 본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랑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의 구성은 다소 복잡하게 되어있어, 무심결에 읽다보면 어느순간 내가 어느 부분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면이 있다. 'Oracle Night'의 주인공 'Sidney Orr'는 직업이 작가이다. 소설속에서 주인공 Sidney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그가 쓰는 소설의 주인공이 나오는데 그의 이름은 'Nick Bowen'으로 출판사 편집장이다. 그에게 유명한 소설가였던 Sylvia Maxwell의 손녀(딸이던가)가 그녀의 유작 소설인 'Oracle Night'를 Nick에게 전달해준다는 식이다.

고등학교 시절 배운 액자식 구성에 따른다면 Auster의 이 소설은 액자가 여러겹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게 정리가 될 수 있겠다.

1. 소설속의 주인공  Sydney Orr.
2. Sydney Orr가 집필하는 소설속의 주인공 Nick Bowen.
3. Nick Bowen이 읽는 Sylvia Maxwell의 'Orcle Night'이라는 소설속의 주인공 Lemuel Flagg.

이렇게 소설속의 소설속의 소설이라는 복잡한 구조에서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진행되고 이에 더하여 Sydney Orr가 제의를 받고 쓰게 되는 영화 시나리오까지 더해지면 이야기는 점점 더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개의 이야기가 지향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이야기가 다루는 것은 언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서이다. 무언가를 입밖으로 내거나 글로 적거나 하는 행위가 실제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현실을 예언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우연이라 보기에는 극히 가능성이 적어보이는 일들을 벌어지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물론 그러한 언어의 힘이 실제로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벌어질 현실에 대한 예견을 할 뿐인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남아있지만 결국 언어와 현실은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오스터 특유의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일들과 함께 각 층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하나의 구심점으로 향하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은 오스터의 소설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야기 플롯에 대한 아이디어는 여러가지 있음에도, 그 어느것도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 할 수 없는 짜투리 아이디어들을 묶어서 대충 소설 하나에 다 끼워넣은 것 아닌가'하는 장난스러운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다양한 짜투리 이야기들을 가지고 하나의 일관된 메세지를 전달하는 큰 이야기를 구성해냈다는 것은 여전히 놀랍기만 하다. 어느 이야기 하나 지루한 면 없이 흥미진진함과 몽환적인 색채가 풍부하다는 것 또한 경이롭다.

다만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은 점이 있는데, 소설속의 소설속의 주인공인 Nick Bowen이 갇혀 있는 상태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의 의미는 잘 모르겠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이야기를 진행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많았으나 이야기는 거기에서 중단된 채로 끝나버린다. 언어가 가진 힘이라는 화두와의 연관성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다소 어렵게 만드는 결론이다.

아무튼, 재미 하나만 가지고도 왠만한 소설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의 재미를 선사한 폴 오스터에게 박수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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