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lbourne in Australia

2012/05/19 18:14


호주 멜버른에 온 지도 벌써 2주가 훌쩍 지나갔다. 일 때문에 출장을 왔고 예정대로라면 3~4개월 머무를 예정이지만 사실상은 하루 하루 생존을 하느라 그동안 계속 긴장의 연속이었다. 뭔가 제대로 된 걸 만들어 보이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짐 싸고 돌아가야 할 상황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몇 개월 지낼 것 예상하고 짐을 싸가지고 왔는데 며칠 만에 돌아가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함과 초조함에 며칠을 보내고, 지금도 사실 하루 하루 연명해 가고 있는 상황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멜버른에 있다 보니 평소처럼 블로그에 글 올리는 것은 힘들 것 같긴 한데, 여유가 생기면 그래도 오기 전에 읽었던 책 내용이라도 올리고, 가져온 책도 간간히 보면서 업데이트를 하던지 해야지.

아무튼 2주 전 처음으로 멜버른 도착해서 호텔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찍은 사진 한 장 느지막하게나마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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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2012/04/22 19:44



감명 깊게 읽었던 소설이 후에 영화화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그 경우 대부분은 영화에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영화 자체로는 나무랄 데 없이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 하더라도 소설의 긴 호흡으로 접했던 이야기가 2시간 남짓의 영상으로 만들어진 것을 접하게 되는 경우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남게 마련인 것 같다. 그래도 원작을 먼저 읽었다는 것에서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영화라는 매체의 한계로 담을 수 없는 원작의 감동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내 나름대로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영화를 재구성해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와는 반대로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을 먼저 영화로 접하게 되는 경우, 영상이라는 매체의 그 강렬한 이미지로 인해 후에 원작 소설을 접해도 이미 한정된 프레임 하에서 한정된 해석에 머물게 되는 경우가 또한 많은 것도 사실이다. 사실 원작 소설은 참 괜찮은 작품이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영화로 먼저 접한 선입견 때문에 아예 원작을 다시 찾아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한참 후에 누군가가 ‘영화는 별로이지만 원작은 참 괜찮은 작품이다’ 말하는 것을 듣고는 영화로 먼저 작품을 접했다는 것을 후회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원작이 있는 영화의 경우 크게 관심이 가는 작품일 경우에는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려고 노력한다.

얼마 전 박범신의 소설 <은교>가 영화화되어 개봉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거기에 더해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읽어본 박범신 작가의 소설이 한 편도 없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을 때, 영화 <은교>를 보기 전에 일단 원작인 박범신의 <은교>를 먼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영화 개봉 소식으로 알게 된 <은교>는 꽤나 관심이 가는 이야기를 그려가고 있었는데, 이런 구성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작 소설부터 읽고 난 후에 영화를 보아야겠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박범신의 <은교>를 이번에 읽게 되었다.

<은교>는 노년의 시기에 은둔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시인 이적요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러져가는 육체와 대비되는 젊음에 대한 갈구, 또는 소멸해가는 육체와는 달리 여전히 뜨거움을 유지하는 이성에 대한 열정을 대비하여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작가 박범신 자신이 말했듯 쉽게 이야기 힘든 소재를 용기를 내어 이야기로 만들어낸 소설이다.

시 외에는 다른 작품에는 관심 두지 않고 오로지 시로서만 자신의 문학세계를 일구어 온 세간의 존경을 받고 있는 시인 이적요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가 병으로 스러져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된 시점에, 세상은 그의 삶과 그의 문학세계를 영원히 추모할 기념관을 세우려 하고 있다. 하지만 유언장에 자신의 사후 1주년에 맞추어 공개하라 했던 그의 회고록은 그의 또 다른 삶, 예상치 못한 그의 범죄와 욕망에 대해 기록해 놓고 있었다.

이렇게 공개를 앞두고 있는 시인 이적요의 회고록과, 말년에 이적요의 수제자로 그를 뒷바라지 했던 작가 서지우의 또다른 기록에는 이전에 밝혀지지 않았던 놀라운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 두 기록은 이적요의 수제자이며 유명한 소설가 서지우가 발표한 작품이 모두 이적요의 작품이었다는 사실과, 이적요의 집안 청소를 간간히 했던 여고생 은교를 이적요와 서지우가 모두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 그로 인해 이적요와 서지우간의 갈등이 시작됐다는 사실, 그리고 결국에는 이적요가 서지우를 살해했다는 놀라운 사실이 적혀 있다. 그리고 소설은 이 두 기록을 토대로 이적요의 생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더듬어가며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다.

작가 박범신이 <은교>라는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노년의 육체를 가진 자의 젊음에 대한 이성에 대한 열정과 욕망, 그리고 질투에서 비롯된 동물적인 공격적이고 비열한 감정의 표출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나의 일천한 문학적 감수성으로는 다 파악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이러한 한계 상황에 처한 한 인간의 내면의 목소리와, 또한 겉으로 드러난 여러 감정의 충돌을 통해 인간 내면의 본성적 욕구와 열망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은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박범신의 <은교>는 단순히 늙은 노인의 젊디 젊은 여고생을 향한 성적 욕망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 작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보다는 그런 성적 욕망으로 비추어본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인간의 본능적 열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스러져가는 육체에서 보이는 인간 존재의 허무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기력이 다한 육체 속에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욕망을 통해 삶과 인생에 대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같이 보여주고자 한 작품이라 판단된다. 조금만 방향을 잘못 탔어도 한 늙은이의 욕망에 대한 대책 없는 하소연으로 끝날 삼류소설과도 같은 소재를 가지고 작가 박범신은 깊이 숨겨져 있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과 두려움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이름은 정말 많이 들어본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번도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은교>를 통해 작가 박범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는 수확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은교>의 경우, 먼저 원작을 읽은 감동을 간직한 채로 영상으로 그려진 또다른 <은교>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영화 <은교>에서도 원작에 충실하여, 노년의 남자의 젊은 소녀에 대한 욕망보다는 인간의 보다 심층적이고 복잡한 감정의 흐름을 잘 그려내고 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한다. 다음 주에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라도 영화 <은교>를 보러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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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의 복합

2012/04/22 17:32



북스피어 출판사와 모비딕 출판사가 손을 잡고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들을 차례 차례 출간하기로 한 ‘세이초 월드’라는 기획의 첫 작품으로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나온 첫번째 작품이 <짐승의 길>이고, 같은 시기에 모비딕 출판사에서 출간한 작품이 바로 이번에 읽은 <D의 복합>이다.

‘D의 복합’이라는, 다소 특이한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소설 중반 이후에 비로소 알 수 있는데, 이 책에 대한 어느 소개에서도 제목이 담고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에 대한 언급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나 또한 이 ‘D의 복합’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도 계속 궁금해 했었는데, 막상 알고 나니 왜 이 의미에 대해서 아무도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사실상 이 소설 속 사건을 풀어가는 데 있어 거의 최상급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것으로 의미에 대해 전혀 모른 채 소설을 읽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나 또한 자세한 의미에 대해 여기에서 언급할 생각은 전혀 없다. 궁금한 분은 직접 읽어 보시길 권해 드린다.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작가의, 소설을 쓰기 위한 치밀한 자료 수집과 분석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왜 이 작가를 두고 자료 수집에 편력에 가까운 집착을 하고, 또 바닥까지 파고드는 근성이 있다는 평을 하는 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사실 제목 ‘D의 복합’이 의미하는 의미 그 자체는 별로 놀라울 것 없는 아이디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놀라운 것은 이 아이디어를 소설 속 사건의 중심축으로 세우기 위해 필요했을 노력과 그를 위한 자료 수집의 과정이 어떠했을 지를 예상해 볼 때, 이 아이디어로 소설 속 사건을 구성하는 것은 결코 녹록치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눈에 뻔히 보일 정도로 당연해 보인다는 점이다.

일본의 지리에 익숙하지 않고, 일본의 지역별로 내려오는 신화나 전설 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작가가 만들어 놓은 구성의 치밀함을 세세한 부분까지 확인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일본인으로서 이 작품을 접하게 되는 것은 내가 받은 느낌의 몇 배에 달하는 충격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소설 속 사건의 구성 자체에 세월의 흔적을 느낄만한 어떤 투박함과 같은 것은 없지만 그래도 수십 년 전 작품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아니면 사건 전개 속도에 있어 다소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느껴져서 인지 다소 색이 바랜 느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작품의 수준 고저의 문제는 아닌 듯 하고 내가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지만 어딘가에서 시대적 차이가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서인 것 같다. 세월의 흔적이 투박함으로서가 아닌 아닌 고풍스러움의 색으로 느껴져 다가오는 작품이라고 하면 될까. 아무튼 다음으로 출간될 ‘세이초 월드’의 작품들이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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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은 위험해>는 지난 2010년 <컨설턴트>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임성순의 최신 작품으로 작가가 계획하고 있는 ‘회사 3부작’의 두번째 시리즈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헷갈리지 말아야 할 것은 이번 작품의 제목이 <문근영’이’ 위험해>가 아닌 <문근영’은’ 위험해>라는 점이다. 국민 여동생 문근영이 납치되었으므로 문근영이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라 지구를 폭파하려는 회사의 음모에 조종당하는 사이보그 문근영이라는 존재가 인류 생존에 위험한 존재이기에 납치를 한 것이다.

자신의 전작 <컨설턴트>를 패러디하는 것으로 시작해, <컨설턴트>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자신을 소설에 등장시켜 회사의 뜻에 따라 차기 작품을 써야만 하는 상황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이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형식인 것 같으면서도 또 어디에선가 이미 한번 쯤은 본 것 같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의 구성이 무척 인상 깊은 작품이다. 이 작품이 특이하다는 것은 책을 들고 한 번 휘리릭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상 가능할 정도로 책의 물리적 구성까지 신경써 독특하게 만들었다. 각주가 매번 노란색 포스트잇을 붙여 놓은 마냥 이곳 저곳 덕지덕지 붙어 있어, <컨설턴트>를 썼던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지 않고는 ‘뭐 이 따위 소설이 다 있어’하는 마음으로 그냥 내려 놓을 확률이 큰 작품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문근영은 위험해>에는 작품 속에 지난 작품을 집필하고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자신이 등장하고, 전작 <컨설턴트>에서 묘사된 ‘회사’가 작품 밖에 실재하여 세계문학상을 수상하고 귀가하는 작가를 접촉하여 차기작을 요구하는 내용이 초반부에 묘사된다. 그 소설속의 작가가 회사의 요구에 의해 집필하게 되는 작품속에는 또다시 ‘임성순’이라는 작가와 동일한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인물이 등장하여 두명의 친구들과 힘을 모아 국민 여동생 문근영이 수업을 듣고 나오는 길에 그녀를 납치하며 사건이 진행된다. 그렇게 사건은 크게 두가지, 첫번째는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회사의 요구로 새로운 소설을 지필하는 내용과 두번째 소설속 작가가 집필하는 소설속에서 문근영을 납치하는 내용이 병치되어 진행된다.

사실 이런 실험적인 작품은 예전에도 다른 작가의 작품을 통해 몇 번 접했던 적이 있고, 그럴 때마다 그리 좋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었다. 아마 이번 <문근영은 위험해>라는 작품도 임성순 작가의 전작 <컨설턴트>를 알지 못한 채 처음으로 접했다면 그 특이한 물리적 편집에 아예 손에서 내려 놓았거나, 읽다가 그냥 도중에 그만 두었을 공산이 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선택해 끝까지 읽었던 이유는 이 작가에 대한 관심과, 이후 집필하게 될 차기작들에도 계속 관심 있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다. 단순히 아이디어가 고갈된 한 작가가 그냥 실험적인 시도라는 것 하나만 가지고 써 내려간 작품이라기보다는 작가 나름대로의 방향성을 갖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 중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 작품을 계속 읽게 만든 원동력인 것 같고, 그래서 회사 3부작의 3부작에 해당할 다음 작품에 대해서도 여전히 기대를 하고 있다.

국민 여동생 문근영을 좋아하는 한 팬으로서 제목에 ‘문근영’이 들어간 만큼 뭔가 새콤달콤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고, 또 <컨설턴트>를 통해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무척 실험적인 작품이긴 했지만 그래도 임성순이라는 작가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수능란한 스킬을 볼 수 있어서 인상에 남은 작품이었다. 다음 작품은어떻게 방향을 틀어 이야기를 이끌어갈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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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남태령 고개가 그렇게 막힐 줄 몰랐다. 7시 공연이니 6시에 집을 나서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집에서 나와 버스타고 사당까지 넉넉 잡아 20분. 사당에선 그냥 택시로 예술의 전당까지 넉넉잡아 10분이니 6시에 나와도 시간이 넉넉하다 생각했다. 공연장 도착해서도 시간이 남을 것을 예상해 공연 전에 읽을 책까지 챙기고, 약간 꾸물대다 집을 나온 시간이 6시 10분. 그래도 여유가 넘쳤다. 그런데 왠걸, 남태령 고개 밑에서부터 꽉 막혀 있는 길을 보며, 토요일은 버스 전용차로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며, 또 토요일은 이 시간대에 여기가 막힌다는 것을 또 한 번 잊었다는 것을 자책하면서도 그래도 늦진 않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정체는 생각보다 심했고, 남태령 고개마루에 버스가 올라갔을 때 이미 시간은 6시 40분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버스가 사당역에 도착하는 시간만 해도 7시가 넘겠다 생각이 들어, 재빨리 기사분께 부탁해 버스를 내려 남태령 역으로 뛰었다. 지나가기만 했지 한번도 들어가본 적 없는 남태령역은 게다가 지하 방공호 수준이었다. 남태령 고개 밑을 지나가는 지하철이야 이전 역이나 이후 역이나 별 차이 없는 높이에서 지하철이 다닐테고, 역 입구만 남태령 고개 마루에 있는 것일 테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까마득한 계단을 헐떡이며 한참을 내려가 개찰구를 지나 방향을 트니 좀전 보다 더 까마득한 에스컬레이터가 기다리고 있다. 아무튼 여기까지는 그래도 숨차게 지나는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지만 그 이후는 뭐 지하철 타고 사당역 도착해서 택시타고 예술의 전당 간 이야기니 굳이 길게 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예술의 전당 도착시간? 다행히 6시 57분에 예술의 전당 주자창 입구에 도착해 헐떡이긴 했지만 공연 전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헐떡이느라 정신 없었으니 전반부에 있었던 바그너의 파우스트 서곡과, 바그너의 베젠동크 시에 의한 5개의 가곡에 대한 이야기는 넘어가자. 어차피 내가 잘 모르는 곡이기도 하고, 사실 오늘의 공연을 오게 된 것은 후반부에 있었던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때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간단하게 언급한다면 앞 선 두개의 연주곡 모두 상당히 잔잔하고 조용한 곡이어서 수원시향의 연주상태를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곡 자체가 잔잔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발동이 다 걸리지 않은 듯한 느낌을 약간 받았다는 정도면 될 것 같다.

인터미션 후 시작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이미 이 곡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지만, 혹시 이 곡에 대해 잘 모르는 분에게는 <봄의 제전>이라는 곡 타이틀과, 또 요즘 본격적으로 꽃이 피며 만개하는 봄의 날씨와 아주 잘 어울리는 조합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사실 곡을 들어보지 않은 분도 예상할 수 있는 식으로 표현한다면 이 곡은 <봄의 제전>이라고 하기보다는 <봄의 난리>라고 하는 게 더 와닿을 수 있을 것 같다. 스트라빈스키가 현대음악 작곡가라는 것을 추가로 언급하고 이 곡에 대해 쉽게 설명하면 온갖 난잡한 소리들이 이곳 저곳에서 튀어나오는 어지럽기 그지 없는 곡이라 할 수 있다.

조폭영화에서 수십명이 몽둥이를 들고 난장판을 벌이고 싸우는 장면을 보면 처음에는 정말 개판이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칼과 몽둥이가 이리 저리 날아다니고 집기가 부서지는 그 난리통에서 수십명이 엉켜 붙어 싸우는 장면을 찍으며 실제 연기를 하고 있는 배우들이 조금도 다치지 않게 하려면 눈에 보이는 난리통과는 달리 배우 한사람 한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맞추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먹질 하나, 피하는 행동 하나, 내딛는 발자국 하나까지 다 미리 계산해서 수십번, 수백번 연습을 해야 사실상 그런 장면을 찍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치밀한 사전 계획과 연습이 없으면, 그 난투극 장면은 말 그대로 배우 여러명이 다칠 수 있는 난장판이 될 수 밖에 없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들으러 가면서 가장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이 복잡하기 그지 없는 음악을 얼마나 합을 맞춰 소리를 만들어 낼 것인가 였다. 언뜻 들으면 정말 난장판이 따로 없구나 하는 소음일 뿐이지만, 연주된 음반을 몇 번이고 들어보다 보면 그 불규칙한 사운드 간에 정교한 맞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러한 세밀한 조정을 통해 나오는, 불규칙하게 보이지만 규칙에 딱딱 맞는 소리에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날 수원시향의 <봄의 제전> 연주가 합이 잘 짜인 난장판 연극을 보여줄 지, 아니면 그냥 난장판 그 자체를 보여줄 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수원시향의 연주는 여러 번 들었지만 피아니스트 출신 김대진의 지휘는 처음이었기에 그의 지휘자로서의 실력을 확인하고픈 기대 또한 있었던 연주회기도 했다. 그런 기대를 갖고 듣게 된 이날 수원시향의 <봄의 제전>은 그야말로 합이 제대로 맞춰져 있어 그 난잡한 소리 속에 치밀하게 짜여져 있는 질서정연함을 확인할 수 있는 연주였다. 각 악기가 서로 다른 박자로 서로 다른 소리를 미친듯이 뿜어내는 부분에서도 각 악기간의 합은 김대진의 지휘하에 철저하게 통제되어 맞춰져 있었고, 악기들 개별 소리 또한 조금의 모자람 없이 충분히 갈고 닦아진 소리를 들려 주었다. 내가 파악할 수 있는 수준에서는 악기의 삑사리도 없었고, 박자의 흐트러짐도 없는 완벽에 가까운 연주였다. 휘휘 저어 놓은 흙탕물과 같은 혼란을 담고 있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수원시향은 일급수 물처럼 맑은 연주로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수원시향의 연주에 흠뻑 빠져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들으며 한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그의 음악은 여전히 충격인데, 이 음악이 초연되던 그 시기에 청중들에게는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꼬리를 물어 지난 주중에 들었던 베토벤의 그 유명한 5번 교향곡 <운명>에까지 이르렀다. 지금이야 클래식 음악을 모르는 사람도 다 흥얼거리는 음악이 되어버렸지만, 베토벤의 교향곡은 그렇게 너무 많이 연주되고, 너무 많이 들어 질렸다 생각이 들다가도, 어느 순간 듣다 보면 어떻게 이런 음악이 그 옛날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슴을 벅차게 하는 그 무엇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지난 주중에 오랜만에 꺼내든 아르농쿠르의 베토벤 교향곡을 들으면서, 특히 5번 교향곡을 들으면서 잠시 손에서 일을 놓고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머리 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들으며, 스트라빈스키 당시의 사람이 <봄의 제전>을 들으며 충격을 받고, 한세기가 지난 지금의 내가 <봄의 제전>을 들으며 충격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베토벤 시절 그의 5번 교향곡을 들었던 당시의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유명한 빠바바밤~ 소리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감동으로 끝난 연주는 여러 번의 커튼콜로 이어졌고, 몇 번의 커튼콜에 이어 다시 지휘대에 오른 김대진의 손짓과 함께 흘러나온 이날의 앵콜곡이 흘러나왔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뭐 별거 아닌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 때는 정말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까지 들었다. 앵콜곡으로 다름 아닌 베토벤 5번 교향곡 <운명>의 4악장이 연주되는 것 아닌가. 정말 가슴이 덜컥 내려 앉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생각도 못했던 이 우연의 일치에 어쩔줄 몰라 하며 앵콜로 연주되는 곡을 들었고, 또 한 번 열렬한 박수로 감사의 표시를 하고 돌아 왔다.

이날 연주된 곡들이 비교적 짧은 곡들이었기에, 인터미션도 있고, 초반부 가곡을 부른 소프라노의 앵콜곡도 있었고, 또 앞에서 말한 베토벤 운명 4악장 앵콜까지 있었음에도 7시에 시작한 연주회는 8시 40분 정도에 끝났다. 연주회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도 나름 짧지 않은 길인데, 덕분에 이른 시각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더할나위 없는 밤이었다.

수원시향과 지휘자 김대진. 다시 한번 이날의 연주에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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